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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사 사 / 기 타 군사연구 제129집 221 “세자가 매우 총명하니 정녕 훌륭한 군주가 될 것이다. 그러나 세자는 깊은 궁중 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兵家의 일을 알지 못하니 그에게 어려운 일을 가지고 억지로 하기를 요구하면 안 될 것이다. ... 오늘날의 큰일은 아마도 나에게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장차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세자의 훌륭한 덕은 국가를 편안히 보존할 수 있겠지만 이처럼 지극히 어렵고 또 위험한 일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17) 효종은 청의 내부 사정이나 군사문제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 세자에게는 기대 하기 힘들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왕위에 있을 때 어떠한 형태로든 북벌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또한 당시 조선의 전체적인 사회분위기가 청에 대한 적개심 과 복수심으로 팽배해 있었기 때문에 효종은 이를 북벌과 연계시키려 하였다. 이는 현질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무모한 계획이었음에도 당시 정국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Ⅲ. 효종의 군사력 강화 삼전도에서 인조의 항복을 받은 청 태종이 사망한 이후 그의 9번째 아들인 순치제(世祖)가 6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실제로는 세조의 숙부인 도르곤(攝政王)이 섭정을 하고 있었다. 도르곤은 對조선 강경론자로서 조선에 대해 여러 차례 사신을 파견하거나 親淸派와 연계하여 조선의 내부사정을 감독 하고 매번 군량을 요구하였다. “ 奏文 (임금에게 아뢰는 글)에 의거하건대, 倭 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으므로 城 을 수리하고 군사들을 모으며, 兵器를 정돈한다고 하는데 이런 말을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선왕(인조)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몇 번인지 헤아리기가 힘 들다.” 18) 17)『송서습유』권7,「잡저」악대설화. 18)『효종실록』권5, 1년 8월 무신.;한편 효종 원년에 온 사신의 횟수가 9회, 효종 2년에 7회, 효종 3년에 2회로 기록되어 있지만 효종 원년에는 매월 청 사신이 왕래하고 있었고, 이 외에도 공식 및 비공식적으로 수차례 사신이 왕래하고 있음이『효종 실록』에 보인다(차문섭,「조선조 효종의 군비확충(상)」,『단국대 논문집』1, 단국대 학교, 1967, 2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