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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사 사 / 기 타 군사연구 제129집 219 兵馬虞候 10) 申瀏 장군이 파병부대 사령관이 되어 참여한 나선정벌에 대한 경과 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 사료로서, 이 논문을 작성하는데 있어 중요한 사료로 이용되었다. Ⅱ. 효종의 북벌정책 효종은 즉위 후 反淸 태도를 강화하기 위해 정국을 장악하고 있던 親淸세력을 약화시키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세력을 키우고자 하였다. 당시 정국은 인조반정으로 西人이 정권을 잡고 있었지만 훈구파 계열로서 내정에 깊숙히 관여하면서 청과 결탁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洛黨과 원두표를 중심으 로 국왕의 의중을 파악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신임을 얻고 있던 原 黨, 그리고 신진계열로서 정책적⋅실무적 역할을 주로 하는 漢黨과 병자호란에서 斥和를 주장하며 당시 산림세력으로 불리던 서인계의 명망가들로 구성된 山黨 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11) 효종은 조정 내에서 자신의 왕위계승을 비판하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즉위 초 산림계 인사들을 집중적으로 등용하였다. 또한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훈척과 사림의 구분 없이 反淸 색채가 뚜렷한 인물 들을 적극적으로 요직에 등용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시방과 원두표, 이완이었다. 12) 10) 병마우후는 각 도의 兵馬節度使(종2품, 각 도의 육군지휘관) 다음가는 직책으로 종 3품에 해당한다. 병마우후를 지낸 사람은 그 경력이 인정되어 병마우후 임기가 종료 된 이후 정3품에 추천, 堂上官에 오르는 등 武人이 진급하는데 있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중요한 직책이었다. 11) 오항녕,「조선 효종대 정국의 변동과 그 성격」,『태동고전연구』15, 태동고전연구소, 1993, 16∼21쪽. 12) 이시방은 산성방어에 능통한 점 이외에도 같은 훈신계열이자 親淸派인 김자점을 견 제한 反淸 자세를 크게 평가받았다(이태진,『조선후기의 정치와 군영제 변천』, 한국 연구원, 1985, 160쪽). 원두표는 사림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軍政에 밝아 병조판서로 재직하면서 효종 의 의중대로 군사력 강화에 대한 일을 추진하였다(송양섭,「효종의 북벌구상과 군비 증강책」,『한국인물사연구』7, 한국인물사연구소, 2007, 173쪽). 이완은 중앙군의 핵심인 御營廳과 訓練都監의 대장 직책을 역임하면서 군사문제에 관한 효종의 자문에 응하며 군사력 강화사업을 주도하였다(이경찬,「조선 효종조의 북벌운동」,『청계사학』5, 청계사학회, 1988, 201∼20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