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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역 사 및 역 사 일 반 군사연구 제129집 173 한국의 IMF외환위기와 정권교체로 인해 변화를 맞게 되었다. 당시 지도자가 된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경제의 회생, 금융위기 탈출이라는 경제적 현실과 남북관계, 일본과의 관계개선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였다. 두 과 제를 달성하기 위해 일본의 우호적인 지원은 김대중 정부에게 필요한 것이었 고 이러한 방향성이 협상의 빠른 타결을 불러오게 되었다. 결국 한국은 한일 관계 개선과 무역 혼란 제거라는 명분 속에 일본과 새로운 한일어업협정을 맺게 된다. 75) 이후 독도 영유권 분쟁은 일본의 역사왜곡과 신사참배 문제와 함께 일본과 의 외교적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독도 영유권 분쟁에 대한 한국의 입 장은 박정희 정권 이후로 일본에 대해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지 않는 이른바 ‘조용한 외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에 들어서면서 한국정부의 입장은 일본의 계속적인 왜곡과 우경화로 인해 변화하기 시작했다. 2000년 9월 모리 일본총리의 독도 망언 76)과 2005년의 3월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제정, 2006년 4월 일본의 수로 측량 시도 등은 일본의 대표적인 우경화 발언이자 일본정책에 대한 한국정부의 변화를 요구한 사건들이다. 77) 이 중에서 특히 일본의 수로 측량 시도는 한국의 대일 기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수로 측량 사건이란 일본이 동해에 있는 배타적 경계수역을 해저탐 사선을 동원하여 탐사하고자 계획하고 그 기한을 2006년 4월 14일~6월 30일 까지로 국제수로기구에 통보하면서 벌어진 과정을 말한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일본의 수로 탐사에 대해 반대성명을 내고 일본 의 독도 국제분쟁화 의도를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막겠다고 발표 75) 신한일어업협정은 전문 및 17개조의 본문, 2개의 부속서, 합의의사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76) 다케시마(독도)는 역사적으로는 물론 국제법적 관점에서도 명백히 일본의 영토이다. 이것은 일본 정부의 명확하고도 일관된 입장이다. 모리 총리의 KBS 인터뷰(2000. 9. 17) 77) 한국 정부가 강경대응으로 전환한 것은 일본이 과거사를 드러내고 독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보이는 상황에서 일본이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평화번영의 이웃으로 공존의 의 지가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김태기ㆍ임재형, “독도 분쟁과 한국의 국가전략: 대안적 해결방안 모색,” 「분쟁해결연구」 (통권 제4권 1호, 2006), 6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