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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역 사 및 역 사 일 반 군사연구 제129집 167 우리 외교부는 아국 영토인 독도에 미 극동군사령부 관하 단발군용기가 출현하 여 어민들이 해산물 채취에 종사하는 현장에서 독도 주위를 2회나 선회한 후 4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어민들에게 피해를 가한 후 남쪽으로 비행 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독도에 대한 침범이자, 우리나라 어업권에 대한 막대한 위협 으로 간주했다. 당시 상황을 한국산악회 부회장인 홍종인(洪鍾仁)씨의 보고서 에 자세히 나와 있다.57) 이 당시 일본은 ‘이승만 라인’에 대한 항의로 소위 ABC선을 설정하여 영해 침범을 시도하였다. ABC 선이란 A선(동경 130도, 북위 38도~35도 15분), B선(동경 130도, 북위 35도 15분~동경 128도 10분, 북위 34도) C선(동경 128도 10분, 북위 34도~동경 125도, 북위 34도)으로 제주도 및 울릉도 독도를 자국 관할의 어업영역으로 간주한 것이다. 일본은 당시 한국보다 뛰어난 어업기술 뿐만 아니라, 해안경비에 있어서도 우월한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칭 ABC 선을 선포하고 이 지역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려고 기도하였다. 따라서 독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마찰은 예견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무부의 공식기록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본과 독도를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 되었다. 1953년 5월 28일 오전 11시경, 일본 시마네(島根)현 요코다(濱田)항으로 부터 시마네(島根)호 약 80톤급의 무전장치된 수산시험선으로 추측되는 1척이 선원 30명을 탑승하고 상륙하여 독도에서 조업 중이던 울릉군 북면 죽 암동 김준혁(당 30세)에 대하여 일본어로 의사소통을 시도했으나, 언어가 불통하여, 어로상황을 살펴본 후 오후 1시경 퇴거한 사실이 있다는 내무부의 보고가 있었다.58)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일본은 오히려 6월 22일자로 항의서한을 발송했다. 59) 일본은 한국의 독도에 대한 수호의지를 끊임없이 시험하면서 외교적 항의문 을 제출하는 등 신경전을 개시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행태는 이웃 주변국이 전쟁상황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국의 영토 팽창야욕을 드러내는 외교적 으로 결례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57) 외무부정무국, 앞의 책, 44~47쪽. 58) 외무부정무국,『독도문제개론』(외무부, 1955), 52~53쪽. 59) 외무부정무국,『독도문제개론』(외무부, 1955), 53~5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