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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29집 17 <그림 1> 연해주의병의 국내 진공루트(1908년 7월) 안중근은 영산전투 참패 후 김영선․갈화춘 등 2명과 동행하여 1908년 8월 말 혹은 9월 초에 연해주 연추로 귀환하였다. 26) 안중근은 그동안 겪었던 심신의 극 심한 고통과 세궁역진(勢窮力盡)한 고단한 형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기 술하였다. (영산전투 후 탈출한 뒤 찾았던 민가의) 노인에게 감사하고 작별한 뒤에 그의 지시 대로 하여 몇 날 뒤에 세 사람이 모두 무사히 (두만)강을 건넜다. 그제사 겨우 마음 을 놓고, 한 마을집에 이르러 몇날 동안 편안히 쉰 다음에 비로소 옷을 벗어보니 거의 다 썩어서 몸을 가릴 수가 없고 이가 득실거려 셀 수조차 없었다. 출전한 뒤 로 전후 날짜를 헤아려 보니 무릇 한 달 반인데, 집 안에서 자 본 일이 없이 언제나 노영으로 밤을 지냈고, 장마비가 그침없이 퍼부어 그 동안의 백 가지 고초는 붓 한 자루로는 적을 수가 없다. 나는 노령 연추 방면에 이르렀다. 친구들이 서로 만나서 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피골이 상접하여 전혀 옛적 모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천 번 만번 생각해 보아도, 만일 천명이 아니었더라면 전혀 살아 돌아올 길이 없는 일 이었다. 27) 26) 반병률, 「러시아에서의 안중근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재해석」, 독립운동사연구 34, 독립 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4쪽. 27) 「안응칠역사」; 윤병석 역편, 안중근전기전집 , 167~16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