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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실효적 지배권 운영과정과 국토안보의 방향 150 군사연구 제129집 첫째로 이러한 연구 성과가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것은 독도경비에 대한 역 사가 제대로 규명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국내에서 독도 및 이에 관련한 연구가 독도영유권문제에 한정되어 이루어져 왔고6), 독도의용수 비대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상태였다. 그나마 연구가 유일한 홍순칠의 수기 에 바탕이 되어 천편일률적으로 동일하다는 데 한계가 있다.7) 둘째로 당시 신문기사를 참조하거나 관계문서를 치밀하게 분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오류가 지속된 것이다. 예를 들어 1954년 4월의 신문기사를 확인해 보면 당시 울릉도 재향군인회에서 ‘독도수비대’를 창설했음을 쉽게 확 인할 수 있다. 더욱이 1973년에 발간된『한국경찰사』제2권에도 1954년 5월 경 민간경비대원 20명을 파견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독도가 우리의 영토 일부로서 당연히 수호 대상이고, 지금까지도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불러오고 있는 현재, 독도의 실효적 지배권을 담 당해온 주권국을 밝히는 작업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해방직후 본격화된 한일간의 갈등요인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독 도수호를 위한 대응책마련에 의의를 갖고자 한다. 분명 한 것은 해방 직후 미군정기 독도에 대한 실질적 경비는 이루어질 수 없었고, 이는 ‘맥아더라인’ 이라는 일본의 어업 활동에 대한 실질적 규약으로 독도에 대한 일본의 침탈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독도에 대한 경비 및 수호는 원활히 이루어 질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6) 외무부정무국 편,『독도문제개론』, 외무부, 1955;황상기,『독도영유권해설』, 근로학생사, 1954;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ㆍ독도학회 공편,『독도영유문제와 민족의식』,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6;독도학회,『독도의 영유와 독도정책』, 1996 ;신용하, 『독도, 보배로운 한국영토: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대한 총비판』, 지식산업사, 1996; 독도연구보전협회,『독도영유의 역사와 국제관계』, 1997;독도학회,『독도영유의 역사와 국제관계』, 1997;독도학회,『독도영유권문제와 해양주권의 재검토』, 1998;독도연구보전 협회,『독도영유권 자료의 탐구』1~10, 1997~2001;홍성근,「독도의 실효적 지배에 관한 국제법적 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석사학위논문, 1998;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와 독도연구소,『독도의 역사적배경 및 국제법』, 2008. 7) 이러한 홍순칠의 신화에는 1965년 발행된 원용섭,『독도』, 대한공론사가 시초이다. 이후 홍순칠이 서문을 써 1979년에 발간된 김교식,『독도수비대』, 선문출판사에 의해서 독도의 용수비대의 공적이 과장되어지다가 홍순칠의 자전적 수기인 1997년도 발행 홍순칠,『이 땅이 뉘 땅인데!: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 수기』, 혜안에 의해 더욱 증폭되었다. 이 외에도 독도의용수비대에 대한 연구에는 다음과 같은 결과물이 있다. 김명기,『독도의용수 비대와 국제법』, 다물, 1998;KBS 미디어,『독도수호!』그것은 또 다른 전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