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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29집 107 침략(侵略)의 실상만이 국내외적으로 크게 선전된 정황이 컸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안 의사를 위협 압제하여서라도 ‘일본의 정책과 이토의 행적이 옳은 것을 잘못알고 의거한 것’이라고 허위자백이라도 끌어내려고 하였다. 그 방법에는 갖가 지 교활하고도 잔인한 행위가 뒤따른 것 같다. 일반적으로 안 의사는 심문과 공 판시 일제의 고문과 학대가 적었던 것같이 선전되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못한 증거와 정황이 도처에서 산견된다. 처음 안 의사 심문시부터 쇠사슬로 결박 하고 수갑과 족쇄까지 채우고 당장 박살이라도 낼 듯이 강압심문을 하였다는 기 록과 사진이 나오기도 한다. 69) 안 의사는 그에 대하여 조금도 겁을 내거나 위축되지 않고 소신대로 피력하자 반대로 ‘이(利)와 생명(生命)’을 미끼로 내세워 유인하려고도 하였다. 먼저 쇠사슬 과 족쇄 등을 풀어주고 고급음식과 간사한 말로 “이제 죽게 되었으니 지난 일은 어떻던 이토의 행적과 일본의 정책을 ‘오해’하여 감행한 것이다.” 자백(自白)하면 살려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출세까지 보장한다는 것들이다. 그러나 안 의사는 그 들에게 이 의거는 자기의 명리(名利)와 현달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로지 한국의 독립회복과 동양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정의(正義)를 실천한 것이므로 다시는 그 런 유인을 하지 말라고 타이르기도 하였다. 또한 일제 관헌은 간교한 위증과 터 무니없는 모함으로 안 의사를 굴복시키고자 기도도 하였다. 의거 후 한국과 일본 은 물론 세계 모든 신문과 여론이 이토를 살해한 것은 안 의사가 진실을 오해하 고 한 것이라는 논리를 펴기도 하였다. 안 의사는 이에 대하여도 자기가 포박된 후 신문 등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일본의 매수된 친일파를 제외한 한국민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그밖에 일본과 이토를 두둔하는 여론은 아직도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동양평화를 깨치는 정책의 잘못을 깨닿지 못한 것이라고 논박 하였다. 그 밖에 서구 열강의 일본두둔 여론은 일본의 팽창정책이 그대로 시행 되어야 그 틈을 타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의 침략정책을 추진할 기회를 잃을 까 염려하여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하고 있다. 더욱이 그들은 광무황 제가 4만원의 거금을 하사하여 이토를 모살하게 하였다는 터무니없는 억지주 장도 펴면서, 이것은 정확한 정보이고 절대 풍설이 아니라고 추궁하였다. 70) 69) 葉天倪,《安重根傳》〈東洋平和攪亂事〉, 24~25쪽; 박은식,《안중근전》《안중근전기전집》, 36쪽. 70) 앞의 葉天倪의 책,〈韓皇의 受誣〉, 2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