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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29집 105 직접 교류하고도 있었다. 그러므로 의열투쟁의 성격과 계보를 밝혀 그 의의를 정 립하는 심층연구도 절실하다. 물론 아직도 일부 논자들과 같이 안 의사의 의열투 쟁을 ‘암살(暗殺)’ 혹은 ‘테러’로 해석하는 편견은 말끔히 불식되어야 한다. 민족주의 사학자 박은식은 세 번 고쳐 쓴 안중근 전기 중 최초의 안 의사 전 기의 제명을 ‘삼한의군참모중장안중근전(三韓義軍參謀中將安重根傳)’이라 하였 고 61) 신채호는 ‘조국 수천년의 악적(惡敵) 되는 일본 흉패(凶悖; 伊藤博文)를 도 전(挑戰)하는 이는 없었다. … 만일 있다하면 안응칠(安重根) 하나 뿐이니라’라고 논찬하였다. 62) 거듭 강조하여도 안중근은 나라를 찾으려 살신성인한 ‘애국지사’이고 나라의 원 수를 갚은 ‘만고의사(萬古義士)’이다. 63) 그보다도 제국주의 침략에 유린되는 동양 평화를 지키려던 ‘평화의 대표자를 자임(自任)한 평화주의자’이며 세계평화를 위 하여 자기 몸을 바친 ‘세계위인(世界偉人)’ 64)으로도 칭예되는 행적과 사상을 보였 다. 안 의사는 그의 평화사상의 염원을 여순감옥에 이감 직후 《안응칠소회(安應 七所懷)》에서 다음과 같이 집약하여 기술한 대목을 재삼 음미할 필요가 있다. “하늘이 사람을 내어 세상이 모두 형제가 되었다. 각각 자유를 지켜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누구나 가진 떳떳한 정이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의례히 문명한 시대라 일컫지마는 나는 홀로 그렇지 않는 것을 탄식한다. 무릇 문명이란 것은 동서양 잘난이 못난이 남녀노소를 물을 것 없이 각각 천부의 성품을 지키고 도덕을 숭상하여 서로 다투는 마음이 없이 제 땅에서 편안히 생업을 즐기면서 같 이 태평을 누리는 그것이라.” 65) 지구상 모든 사람의 평등(平等)과 자유(自由), 그리고 전부(天賦)의 성품(性品)을 바탕으로 각기 자기 나라 자기 땅에서 인간의 도덕을 숭상하고 서로 경쟁하여 싸우지 말고 생업을 즐기면서 평화를 지켜 태평시대를 이룩하려던 ‘문명시대(文明 時代)’의 건설을 염원한 그의 소신이다. 그의《동양평화론》〈서〉 66)의 결구대로 ‘심찰(審察)’할 평화사상이 아닌가. 61) 박은식(白山逋民), 〈三韓義軍參謀中將安重根傳〉《民國彙報》, 제1권 제1기, 上海, 1913, 3~8쪽;《白巖學報》I, 백암학회, 2006, 362~367쪽. 62) 신채호,〈利害〉《개정판 단재신채호전집》下, 단재신채호기념사업회, 1995, 149쪽. 63) 앞의 계봉우의《만고의사 안중근전》참조. 64) 앞의 葉天倪,〈結論〉《安重根傳》, 30~33쪽. 65) 앞의《安應七所懷》. 66) 앞의《東洋平和論》〈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