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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전쟁에서의 ‘피의 능선’ 전투 교훈 102 군사연구 제128집 공격을 하다가 실패하였으나 9월 13일 밤에는 사력을 다해 공격할 준비를 하 였다. 밤이 되자 과달카날 해안에 다시 나타난 일본 함대는 헨더슨 비행장과 그 주변 의 미군 방어진지에 다시 함포사격을 가하였다. 밤 9시 30분, 정글 쪽에서 조명탄 이 하늘로 솟아오르면서 주위를 밝혔다. 곧 이어 다른 조명탄이 일본군 진지에서 발사되자 이것을 신호로 2천명의 일본군이 파상돌격을 감행하며 정글에서 나와 미군 진지를 향해 총 공격을 감행하자 미 해병대의 전투력 손실이 늘어나면서 룽 가강 쪽 방어진지가 와해되는 듯 했으나 비행장의 서쪽을 방어하는 제5연대의 일 부 병력을 남쪽 방어진지로 전환하여 전투력을 보강함으로써 에드슨중령은 남쪽 방어 진지를 계속 지켜내었다. 일본군 제1대대장 고쿠쇼 소좌는 군도를 휘두르면 서 선두에 서서 미군 진지를 향하여 돌격하였으나 그 앞에는 미군이 쳐 놓은 두 개의 철조망이 있었다. 일본군은 첫 번째 철조망은 돌파하였으나 두 번째 철조망 앞에서 둔좌 되자 미군은 가용 화포의 화력을 그곳에 집중하였고 일본군은 중대 장을 포함하여 소대장과 모든 병사들이 거의 전사하였고 고쿠쇼 소좌도 여기서 전사하여 결국 대대는 공격 목표인 비행장에 접근하지 못하였다. 제2선 공격대인 다무라 소좌의 대대는 큰 희생을 치르면서 미군의 방어선을 뚫고 병력의 일부인 제6중대가 미 해병 제1사단 사령부와 공병대 막사가 있는 곳까지 진출하여 막사 안에 들어가기까지 하였으나 곧 고립되어 미군의 반격을 받고 퇴각하여 일본군 진지로 돌아왔다. 나. 비겁한 대대장 한편 제1대대와 마찬가지로 제1선 공격대인 제3대대는 전날 발목을 삐어 지 팡이를 짚고 다니는 대대장 와타나베 중좌와 그의 부관 등이 미군의 치열한 사격 을 피해 안전지대로 피신하여 전투지휘를 회피하였다. 그러자 선임 중대장이 대 신 대대를 지휘하여 야습을 행하려고 했으나 결국 그 중대장도 지휘를 하지 않아 일본군으로서는 중요한 순간에 제3대대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9월 13일 밤을 보내게 되었다. 제3대대 병력 중 일부 소수 병력만 이날 밤의 야습에 참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 앞에 나온 대로 다무라 소좌의 부대가 미군 막사까지 점령한 순간에 함께 공격에 참가해야 할 대대가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전투가 끝난 후인 9월 15일, 이 사실을 알게 된 가와구치 소장은 와타나베 중좌를 불러 “비겁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