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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전쟁에서의 ‘피의 능선’ 전투 교훈 94 군사연구 제128집 폐하였다. 이 일루강 전투가 7) 있기 전까지는 일본군은 지상전투에서 항상 연합군 을 격파하였다. 그러므로 이치기 대좌는 중화기도 없이 불과 916명의 병력으로 (제2진이 도착하는 것도 기다리지 않고) 1개 연대 병력이 방어하고 있는 미군 진 지를 공격한 것이다. 겁쟁이 미군은 일본군의 그림자만 봐도 도망갈 것이라고 교 만하게 생각하였다. 이 전투는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 그동안 계속되는 지 상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패한 연합국 군대가 일본군을 격파한 첫 전투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므로 이 전투 이후, 미군은 일본군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III. 전투경과 1. 1차 피의 능선 전투 가. 가와구치 지대 파견 이치기 지대가 실패하자 대본영은 가와구치 기요다케(川口淸健) 소장의 여단 급 지대(支隊)를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8) 이에 가와구치 지대는 8월 24일, 수송선 2척에 분승(分乘)하여 구축함 4척의 호위 속에 중부 태평양의 트럭 환초 9)에 있는 일본군 해군기지를 출발하여 과달카날로 향하였다. 트럭 환초에서 과달카날 섬 까지는 4일간 항해를 해야 도착할 수 있었으나 항해하는 도중에 미군기에 발견되 어 공격을 받아 9월 7일이 되어 일부 병력이 간신히 과달카날 섬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일부 병력은 수송선을 타고 미군기를 피해 헨더슨 비행장을 사이에 두고 직선거리로 85km 떨어진 먼 거리에 두 개의 부대로 각각 나뉘어져 과달카날 섬 의 북부해안에 상륙하게 되었다. 이 두 개의 부대 사이에는 대규모 미군 병력이 있어 헨더슨 비행장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연락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으나 9월 10일경 6천명의 가와구치 지대 병력이 이미 과달카날에 상륙을 6) 무게 12톤, 주포 37mm 7) 전쟁 당시 미군이 제작한 지도에는 일루강을 테나루<Tenaru>강이라고 잘못 인쇄되어 대 부분의 전사책이 이 전투를 테나루강 전투라고 기록하고 있음. 8) 당시 일본군에는 준장계급이 없었다. 장군은 소장, 중장, 대장, 원수 계급만이 있었음. 9) 현재 중부태평양에 있는 독립국인 마이크로네시아 연방<Federal States of Micronesia>에 속한 작은 환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