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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쟁 사 군사연구 제128집 93 <그림 2> 이치기 지대의 공격 방향 장에 ‘헨더슨 비행장’(Henderson Field)이라고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2개월 전인 1942년 6월초, 미드웨이 섬 해역에서 벌어진 미드웨이 해전 당시 일본 해군 항공 모함 가가(加賀)에 기체를 충돌하려고 돌진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해병 항공대 돈트리스(Dauntless) 급강하 폭격기 비행대장이었던 헨더슨(Lofton Henderson) 소령의 무용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미 해병대는 비행장을 점령하자마자 비행장 주위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2. 일본 육군의 첫 패전 일본군은 이 비행장을 탈환하기 위해 보병 제28연대장이었던 이치기 기요나오 (一木淸直)대좌(대령)가 지휘 하는 이치기 지대를 급파한 다. 원래 이치기 대좌의 부 대는 미드웨이에 상륙하는 임무를 받았으나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함대가 패하 는 바람에 일단 괌 섬에 가 서 대기하던 중에 과달카날 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이치기 대좌는 2천명의 병 력 가운데 우선 선발대 제1진 916명을 데리고 구축함 6척에 승선하여 과달카날 섬에 상륙하였다(헨더슨 비행장의 동쪽 해안에 상륙함). 그의 부대는 헨더슨 비 행장의 동쪽에서 비행장에 돌입하기 위해 8월 21일, 전원 야간 공격을 하였지만 일루(Ilu)강을 이용한 미군의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휘하 부대원 871명이 헨더슨 비행장 동쪽에 흐르고 있는 일루강변에서 전사하고 15명이 미군에 포로가 되었 다. 미군은 전사자 43명, 부상 75명이었다. 이에 이치기 대좌 자신도 연대기를 불 태우고 자살하였다. 전투에서 패한 이치기 지대의 생존자들은 동쪽으로 후퇴하여 전과 확대를 위해 M3 스튜어트 경(輕)전차를 6) 앞세우고 추격해 오는 미군을 피해 정글 속으로 은 5) 후일 한국전쟁시 인천상륙작전의 주력부대였고 장진호 전투에서 용명을 떨친 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