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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전쟁에서의 ‘피의 능선’ 전투 교훈 92 군사연구 제128집 켜 육로를 통해 포트모스비를 공격하게 된다. 일본군은 포트모스비를 점령한 뒤 그 천연항구와 이미 호주군이 만들어 놓은 비행장을 이용하여 호주를 공격할 계획이었다. 거의 같은 시각, 뉴기니섬의 동쪽 에 있는 솔로몬 군도였고 3) 수도는 과달카날 섬에 있는 인구 10만 명의 호니아라 (Honiara)의 과달카날(Guadalcanal) 섬에는 1942년 5월에 일본 해군 설영대(공병 대)가 상륙하여 비행장 건설 작업을 시작하였다. 과달카날 섬은 솔로몬 군도의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으로서, 그 북부해안에 있는 평야에 비행장을 건설하여 이 비행장에서 장거리 폭격기를 출격시켜 미국에서 호주로 가는 선박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물론 일본군은 이 비행장을 이용하여 솔로몬 군도 동남쪽에 있는 뉴헤브리지 제도 4)와 피지 제도는 물론 더 동쪽에 있는 사모아 제도까지 점 령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 비행장 건설을 위해 일본 해군 설영대는 약 2,600명의 노무자를 데리고 왔는 바 그 대부분은 강제 징용되어 온 우리나라 노 무자들이었다. 일본군은 비행장을 완공하였으나 곧 미군에 빼앗기고 그 뒤 탈환 을 위해 6개월에 걸쳐 치열한 전투를 치렀지만 결국 실패하고 1943년 2월, 3만명 의 전사자를 내고 과달카날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된다. 이 6개월 전투 가운데 ‘피 의 능선’ 전투는 사실상 과달카날 전투의 향방을 결정한 전투였다. 그러므로 당시 피의 능선 전투를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일본군의 실수를 분석하여 이를 통해 전사(戰史)의 교훈을 얻으려고 한다. II. 전투 초기 상황 1. 비행장 완성과 탈취 일본 해군은 약 3개월의 공사기간 뒤 활주로를 완성하고 이 비행장을 근처에 흐르는 강 이름을 따라서 ‘룽가’(Lunga) 비행장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러나 비행 장에 일본전투기와 폭격기가 이동하여 오기 바로 전인 8월 7일, 미 해병 제1사단 이 기습적으로 상륙하여 룽가 비행장을 탈취하였다. 미 해병 제1사단은 5) 이 비행 3) 1978년 영국에서 독립하였고 수도는 과달카날 섬에 있는 인구 10만명의 호니아라 <Honiara>임. 4) 1980년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통치에서 독립한 오늘날의 바누아투<Vanuatu>공화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