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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간전쟁 승리의 전략전술 86 군사연구 제128집 는 것이다. 점령지의 민심을 장악하지 못하면 정의의 전쟁을 치렀다고 말하기 어 렵고 지속적인 안정을 이뤄내기 어렵다. 문제는 이슬람권의 경우 반미정서가 쉽 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필자가 이라크 현지 취재 때 거듭 확인한 중요한 사실 하나. 대부분의 이라크 사람들은 사담 후세인 독재를 미워했지만 이라크 땅에 외국군(미군)이 장기 주둔 하는 데 대해 거부감을 느낀다. 이는 아랍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정서로 풀이된다. 미군 점령 아래 바그다드 서쪽 외곽에 자리 잡은 아부 그라이브 감옥과 쿠바 관 타나모 수용소에서의 무슬림 포로 학대, 그리고 더욱 노골화되는 미국의 친이스 라엘 일방주의는 반미감정을 악화시킨 3대 요소로 꼽을 수 있다. 빈 라덴은 이미 이슬람의 전략적 무게중심이 반미정서에 바탕 한 민심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9․11 뒤 알 자지라 방송을 이용한 일련의 잘 계산된 선전 공세들은 전략적 무게중심이 이슬람권 민중의 정치정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 이슬람권을 향해 반미 투쟁이유를 설명하고 이라크와 아프가니 스탄의 반미정서를 부추기는 잇단 미디어 공세를 펴는 것은 다름 아닌 전략적 무 게중심을 겨냥한 것이다. 그런 미디어 공세는 9․11 테러 뒤 지난 8년 동안 많은 무슬림 청년들로 하여금 국경을 넘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의 무자헤딘(이슬람 전 사) 투쟁 또는 유럽에서의 자생적인 테러활동에 몸을 던지도록 이끌어 왔다. 클라우제비츠 무게중심 이론은 2006년 여름 이스라엘 - 레바논 헤즈볼라 전쟁 에 대입해도 유효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스라엘이 설정한 헤즈볼라의 전 술적 무게중심은 헤즈볼라 지도부다. 헤즈볼라의 최고의사결정기구는 ‘마즐리스 알 슈라’(평의회)이지만, 지도부의 정점은 헤즈볼라 사무총장 셰이크 하산 나스랄 라(1960년생)다. ‘젊지만 카리스마가 강한 인물’로 알려진 나스랄라는 1992년부터 헤즈볼라의 실질적인 지도자다. 이스라엘군이 개전 초기부터 레바논 수도 베이루 트 남부지역을 강타한 공습도 나스랄라의 은거지로 의심되는 곳들을 노린 것이었 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나스랄라 사무총장을 죽이는 데 실패했다. 헤즈볼라의 무 게중심을 점령하지 못한 셈이었다. 한편으로 헤즈볼라의 전략적 무게중심은 레바논 안에서의 헤즈볼라 지지도, 그 리고 한 걸음 나아가 이슬람권의 헤즈볼라에 대한 지지도다. 레바논은 다종교사 회로 바로 그 때문에 오랜 내전을 겪은 나라다. 이슬람교도들도 있지만 기독교 교도들도 있다. 이스라엘은 개전 초기에 베이루트 공항과 발전소, 도로 등을 공습 함으로써 레바논 사회에 반(反) 헤즈볼라 여론이 일어나길 기대했다. 이스라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