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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전쟁 파병의 역사적 의의 10 군사연구 제128집 술책임지역(TAOR)이다. 당시 사단장은 채명신 소장이고 제1연대장은 김정운 대령이다. 1965년 12월 22일 제1연대가 퀴논지역 작전한 부대는 배정도 중령이 지휘하는 1대대와 이필조 중령이 지휘하는 2대대였다. 이 중대한 사건에 접해 당사자 격인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이 모여 대책을 강 구하였고 대책회의 결과 강정구, 한홍구 두 교수에게 학술회의를 제의했다. 학술 회의는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군사평론가협회 주관되고 동아일보 후원으로 이루어졌으며, 필자가 기조연설을 하고 양측 발표자인 이선호, 지만원, 강정구, 한 홍구 네 명의 주제 발표자가 발언을 했다. 강정구와 한홍구 두 교수는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과 민간인 참상’이 주제였고, 베트남전 참전 당사자 격인 이선호, 지만원 두 박사는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재조명’이 주제였다. 주제발표가 끝난 뒤 채명신 장군이 결론적인 연설로 끝맺었다. 그날 학술회의에서 강정구, 한홍구 두 교수는 구수정 여인이 만들었다는 문제 의 이상한 글을 낭독 주장한 것 외에 단 하나의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이로써 한국군의 양민 학살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일단락이 되는 듯 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2009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군의 용병설과 양민 학살설이 학술지에 발 표되는가 하면 학위 논문에도 인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 밝히지 않을 수 없는 책임을 절감해 『군사연구』지에 기고하게 되었다. 주월 한국군은 양민의 희생 방지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두고 있었다. 채명신 사령관의 가장 강력한 훈령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양 민을 보호하라’이었다. 이 훈령에 따라 우리 한국군은 우리 측 희생을 각오하면서 까지 양민 보호에 나섰다. 물론 전장에서의 양민의 희생을 100% 막을 수는 없다. 어느 전쟁에서나 군인의 희생보다 민간인의 희생이 많다. 더구나 베트콩은 여자 도 있고 심지어 어린이까지 전장에 이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이들이 수류탄 에 희생되는 비극도 지켜봐야 했다. 지금 학계에서 인용되는 한국군의 양민학살 자료는 대부분 베트남전쟁 당시 베 트콩이 심리전에 이용하였던 허위사실임을 여기서 분명히 밝힌다. 베트남전 참전 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기여해서 오늘날 경제력의 바탕이 되었고 한국군이 제1 급 군대로 거듭날 수 있는 토대를 남겼다는 긍정적 시각이 더 우세한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부정적 시각에 철저히 대비해야 하는 경계심도 갖추어야 한다. 참전 노병들은 매일 그런 간접침략을 분쇄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 음을 현역 후배들에게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