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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쟁 사 군사연구 제128집 81 “대지의 저주 받은 자들”(The Wretched of the Earth)을 통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알제리아 독립전쟁에서 식민지 종주국 프랑스의 군사력은 압도적이었다. 독 립투쟁에 나선 게릴라조직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은 전투력의 열세를 만회하 는 수단으로서, 프랑스 안에서 반전여론을 일으키기 위한 전술에 주력했다. 그 가운데는 테러전술도 들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이 즈음도 그렇지만, 테러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유효한 수단으로서의 정치적 폭력이다. 독립전쟁 초기 FLN 지도자들은 프랑스인들에 대한 테러공격을 가능하면 피하려 했고, 친 프랑스 알제리아 협력자(부역자)들을 처단하는 수단으로만 사용했다. 16) 그러나 전쟁 1년째인 1955년 FLN 지도자들은 유럽인들을 겨냥한 대규모 테러공격이 국 제적인 눈길을 알제리아 쪽으로 끌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에 대한 보복으 로 프랑스 정착민들을 비롯한 식민주의자들은 알제리아 인들을 상대로 한 무자비 한 테러를 저지르곤 했다. 유혈투쟁의 잔혹상이 날로 심해가자, 프랑스에서는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지식 인사사중심으로 반전 여론이 자연스레 일어났다. 이 같은 반전여론은 1958년 “알 제리는 프랑스 땅”이라는 슬로건 아래 대통령에 당선됐던 샤를르 드골 장군의 판 단을 바꾸도록 만들었고, 1962년 알제리아를 독립시키겠다고 선언하도록 이끌었 다. FLN의 약한 군사력이 막강 프랑스 군을 상대로 한 승리는 아니었다. 클라우 제비츠의 전쟁이론에 비추어 보면, FLN은 독립전쟁 과정에서 프랑스 여론을 프 랑스의 무게중심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승리였다. 무게중심을 프랑스 군 에 두었다면, 이룰 수 없는 승리였다. 그것은 정치적 승리였다. 2차 대전 뒤 미국이 개입한 두 개의 큰 전쟁인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도 미국내 여론이 전쟁의 흐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게 정설이다. 두 전쟁 의 초기엔 미 국민들 가운데 60% 이상이 “미국의 개입결정은 잘못되지 않았다” 는 견해를 나타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군 사상자가 늘어나자, 전쟁 막 바지에는 지지율이 30%로 떨어졌다. 17) 한국전쟁의 경우 1950년 말 중국의 개입 으로 미군이 밀리고 많은 사상자를 내자,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다. 이런 흐름은 투르만 대통령이 휴전협상을 추진하도록 나서도록 만든 결정적인 요인으로 분석된다. 16) Hutchinson, Martha C., Revolutionary Terrorism, the FLN in Algeria, 1954∼1962 (Stanford : Hoover Institution Press, 1978), p.140. 17) Alan Monroe, Public Opinion in America (New York: Dodd, Mead & Company, 1975), p.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