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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분쟁 56 군사연구 제128집 며 정부군은 공군까지 동원하여 진압작전을 실시하였으나 이슬람교도들이 게릴라 전을 감행해왔으므로 내전은 진정되지 않고 게릴라는 스스로를 무자헤딘이라고 칭하면서 각지에서 정부군에 타격을 가해왔다. 1979년 정부군을 지원하기 위해 소련은 다수의 군사고문을 파견하였고 교육과 경제재건을 위해 민간 전문가까지 파견하였고 글자 해독률을 높이고 여성의 권리 를 증진하기 위한 활동을 지원했으나 오히려 이슬람 게릴라 활동은 한층 활발해 졌고 공격대상은 전체 소련인으로 확대되어 갔다. 이 와중에 제2인자인 아민 (Ahmin)수상이 쿠데타를 일으켜 다라키를 살해하고 정권을 잡았으나 내전은 전 국으로 확대되어 갔다. 다라키나 아민은 이슬람교도의 활동을 봉쇄할 수 없다고 판단한 소련정부는 아프간 침공을 계획하였으며 1979년 소련군은 전면 침공을 개 시 제105친위 공정사단과 KGB특수부대는 600여 명을 사살했다. 소련은 카르마루 를 새 대통령으로 내세운 새 정권이 탄생하였으나 이때부터 약 9년간에 걸친 큰 전쟁이 시작되었다. 5. 아프간 내전과 탈레반의 등장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은 1980년 무자헤딘이라 불리는 무슬림들이 성전을 선포하면서 본격화되었다. 1989년 소련은 무자헤딘의 지속적인 항쟁과 국내외 압박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철수했다. 1992년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은 나지불라 정권을 축출하고 랍바니 대통령을 선출하였 으나 총리로 내정된 헤크마티야르가 불복하면서 종족, 종파, 정파가 복잡하게 얽 힌 내전에 돌입하게 된다. 이 내전에는 수많은 종족과 정파가 있었지만 크게 4개의 세력으로 나눌 수 있 다. 타직족(Tajik)을 중심으로 한 랍바니 전 대통령과 대 소련항쟁의 영웅 마수드 (Ahmad Shah Masud) 장군이 이끄는 세력, 총리로 내정되었으나 불복하며 내전 을 시작한 헤그마티아르(Gulbuddin Hekmatyar)의 파쉬툰족 53)(Pashtun) 중심의 정파, 시아파인 하자라 족을 중심으로 한 정파 및 소련군의 장국이었던 우즈벡족 53) 파쉬툰족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접경에 위치하며 파키스탄에서는 파탄족이라 불 린다. 파쉬툰족 또는 아프간족은 현재 아프가니스탄인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파쉬 툰족의 기원은 불분명하다. 파쉬툰족은 자신의 혈통을 유대인의 예언자 중의 하나인 다 윗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