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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역 사 및 역 사 일 반 군사연구 제128집 55 영국은 아프간을 자국의 세력하에 두려고 제1차(1838∼42) 및 제2차(1878∼80) 전쟁을 일으켰고. 이 전쟁의 결과 아프가니스탄 영토일부를 인도에 할양하였고, 1901년에는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다. 그 후 1919년 인도정부에 대해 반기를 들어 제3차 전쟁을 벌인 아프가니스탄은 마침내 독립하게 되었으며 독립한 아프가니스 탄에서는 때때로 쿠데타가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1973년에는 국왕통치제가 공화 제로 바뀌었다. 그로부터 5년 후 친소련파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 한다. 아프간을 위요한 혼란은 이때부터 본격화된다. 한편 1978년에 발생한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전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및 중 동전역에 요원의 불길처럼 확산되었다. 같은 해의 쿠데타로 발생된 사회주의정권 은 즉각 이슬람의 거친 반발에 직면했다. 북쪽의 초강대국 소련이 압박해서 밀어 닥친 사회주의였음으로 긍지 높은 이슬람 지상주의가 아프간 전국을 무대로 전면 에서 충돌해갔다. 소련이 이처럼 아프간의 이슬람화를 단절시키고자 하는데에는 아프간에 인접한 타지크공화국 국내에 다수의 이슬람교도가 존재하므로 아프간의 영향으로 타지크 공화국이 이슬람 국가로 변경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또한 소련은 지정학적 으로 이 땅을 중요시했는데 그 이유는 아프가니스탄이 인도·아시아 대륙과 중동 의 중간지대에 위치해 있고 나아가 인도양으로 나가는 길목에 가까이 있기 때문 이다. 한편 이웃나라 인도와 파키스탄은 같은 종교의 아프간 국민을 심리적으로 지지해 왔다. 1978년 4월에 일어난 4월 혁명은 군사쿠데타로서 대통령 친위대가 쿠데타군 과 맞서 싸웠으나 중화기로 장비한 혁명군인 육군에 패하였다. 공화제의 정점 에 있던 다우드 대통령과 그 일파를 축출한 인민민주당의 다라키를 중심으로 한 혁명평의회는 친소련정권을 수립하였으나 군내부에서도 막스주의와 대립이 시작되었다. 아프간 민족의 남성들은 예로부터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통이 있으며 소년들은 16세만 되면 공장에서 소총을 구입하여 사격연습에 열중 한다. 혁명 후 6월부터 52) 다라키(Darraki) 정권에 대항한 반란이 계속 발생하였으 52) 1978년 다라키를 중심으로 하는 소련에 동조하는 사회주의자들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친소련 공산주의 정권이 탄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