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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분쟁 38 군사연구 제128집 페르시아 제국의 명맥을 이었다. 파르티아 제국 26)은 현재의 이란과 아프가니스 탄의 서부지역을 포함하였으며 아르케메네스 제국의 일부인 사트라피로 있었는데 알렉산더 대왕시대에 히르카니아와 합병되었다가 이 둘은 모두 셀레우코스 왕국 의 한 주가 되었었다. 원래 중앙아시아의 파르니 유목민들이 파르티아로 들어왔으며 파르티아 제 국의 창시자인 아르사케스(Arsacid) 1세는 그리스왕 디오로투스 지배지역의 총독이었는데 반란을 일으키고 서쪽으로 가서 나라를 세웠다. 후에 미트리다 테스 1세와 아르타바누스(Artabanus) 2세의 정복에 의해 이란고원 자체와 티 그리스, 유프라테스 유역이 파르티아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 후인 AD 224년 남부 이란의 지방통치자 아르다시르가 반란을 일으켜 사산왕조를 건국했다. 박트리아 제국 27)은 파르티아 건국과 비슷한 시기인 BC 250년 셀레우코스 왕조인 시리아왕국 예하의 박트리아 사트라프 28)였던 디오도토스(Diodotus)가 독립왕국을 세웠으며 이를 뒤이은 에우티데모스의 후계자들은 힌두쿠시산맥과 인도북서부로 진출 그곳에 인도-그리스계통의 왕국을 세웠다. 박트리아 왕국 은 BC 175년에 인도 펀잡지방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이에 따라 헬레니즘은 중앙아시아와 인도 북서부지역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BC 128년 그리 스인들은 월지국의 속방이 되었고 얼마 있지 않아 월지국은 박트리아를 정복 했다. 26) 파르티아제국은 고대 이란의 왕국(BC 247∼AD 226)으로서 왕조의 창시자 아르사케스의 이름을 따 아르사크왕조라고도 하며, 중국에서는 안식(安息)이라고 불렀다. 시리아 국왕 안티오코스(2세)가 이집트전쟁을 일으켰을 때, 이 기회를 타서 독립국가가 되었다. 왕국 은 카스피해(海)의 남동지방을 본거지로 하였으나, 차차 북동 이란으로 영토를 신장시켜, 수도 헤카톰필로스의 이름이 서방에 알려졌다. 27) 박트리아제국은 힌두쿠시산맥과 아무다리아강 사이에 고대 그리스인이 세운 나라(BC 246∼BC 138)로서 중국에서는 대하(大夏)라고 하였다. 아케메네스왕조 때는 페르시아제 국(帝國)의 박트리아나주(州)였다. 알렉산드로스제국이 붕괴한 뒤에는, 그 유장(遺將)인 셀레우코스 1세가 세운 시리아왕국의 한 주가 되었다. 그러나 시리아왕국이 쇠퇴한 틈을 타, 사트라프(Satrap : 州知事)로 임명된 디오도투스가 중앙으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왕 이 되고, 박트라(지금의 발흐)에 수도를 정하였다. * 박트리아는 대월지에 정복되고 대월지가 서투르키스탄과 아프간 북반부를 점령했을 때 영 지안에 설치된 5제후의 하나린 귀상에서 발전된 쿠샨왕조는 힌두쿠시 이남의 간다라를 지 배하여 간다라미술이 형성되었으나 파르티아 대신에 발흥한 사산조페르시아에 병합되었다 가 에프탈에 멸망됨. 28) 사트라프 [Satrap] 고대 페르시아 속주(屬州)의 태수(太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