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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역 사 및 역 사 일 반 군사연구 제128집 33 둘째는 사산조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아라비아를 통일한 마호메트에 의해 시작된 이슬람제국은 정통칼리프시대와 옴미아드시대를 거쳐 후 후옴미아드조 와 압바스조의 동․서칼리프 시대로의 분열을 거쳐 셀주크투르크 13)와 호라 즘 14) , 일한국 등으로 변천된 시대와 몽고의 지배를 받다가 몽고 황실의 후예가 건국한 티무르제국을 거쳐서 사파비 왕조와 무굴제국으로 분할 영유된 때까지 를 말한다. 셋째는 1722년 아프간족 아흐마드(Ahmad Shah)가 사파비왕조를 타도하고 나 디르샤(Nadir Shah)의 부하였던 두라니족의 지도자 ‘아흐마드 칸 아브달리’가 칸 다하르에서 왕위에 오르고 건국한 아프간 민족국가인 두라니(Durrani)왕조 15)로부 터 바라크자이왕조 16) 에 이르다가 19세기부터 영국과 러시아의 항쟁의 대상이 되 어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에 병합되어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다가 영국과 3차 아프 간 전쟁 결과 ‘라왈핀디 화평조약 17)’을 체결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이 독립된 이 후부터 마지막 자히르 국왕시대 때까지를 들 수 있다. 13) 셀주크 투르크는 11세기경부터 14세기까지 중앙아시아와 중동 일대를 다스린 수니파 무 슬림 왕조를 말한다. 셀주크 왕조라고 하기도 한다. 셀주크 투르크는 중앙아시아의 부족 연합체로 발흥하여 중동에서 투르크 세력의 시조를 이루었고 제1차 십자군의 공격 대상 이 되었다. 오늘날 아제르바이잔, 터키, 투르크메니스탄의 투르크인들의 문화적 조상으로 여겨지며 페르시아 문화의 보호자였다. 14) 호라즘 제국은 아무다리야 강(江) 하류 유역, 지금의 히바에 있었던 국가(1077년∼1231 년)이다. 아라비아인은 후와리즘이라 부르고, 원조(元朝)의 사서(史書)에는 화자자모(花刺 子模)라 기록되어 있다. 셀주크 왕조의 부장(部將) 아누시티긴이 이 땅에 책봉되었는데, 아들 쿠트브 웃딘 무함마드(재위 1097∼1127)는 술탄에서 독립, 우르겐치를 수도로 하였 다. 15) 두라니왕국은 카불을 수도로 하여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한 아프간계 이슬람왕조(1747∼ 1842). 1747년 아프샤르(Afsharid)왕조의 나디르 샤(재위 1736∼1747)가 죽은 뒤, 부장 (部將) 아브달리족(族)의 아흐마드샤 두라니(재위 1747∼1773)가 이란으로부터 독립하여 두라니왕조를 창설하였다. 동시에 아브달리라는 부족명을 두라니로 고침에 따라 두라니 라는 왕조명이 생겼다. 수도는 1773년까지 칸다하르였으나, 그 후 카불로 옮겼다. 16) 바라크자이 왕조(―王朝 Barakzay) 아프가니스탄의 왕조(1826∼1973). 두라니왕조의 1분파로서 D. 무하마드가 1819년에 카불 을 장악, 26년에 아미르(amir;지배자)가 되었다. 제2차 아프간전쟁에서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다가 1919년에 독립을 회복하였으며 73년에 아프가니스탄공화국이 생겨났다. 17) 하비브알라는 내정 면에서는 하비비아 학교의 기초를 다지고 페르시아어 주간신문을 발 행하여 민족적 자각의 향상을 촉진함과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중 립을 엄수하였다. 1919년 하비브알라가 반(反)영국주의자의 손에 암살된 후 같은 해 후계 자가 된 아만알라는 반영국적 의견에 동감하여 인도정부에 대해 적대행위를 취했으나(제 3차 아프간전쟁) 승패를 가리지 못하고 8월에 라왈핀디 화평조약이 맺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