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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사 사 / 기 타 군사연구 제128집 277 라 할 수 있는 실전적인 교육훈련을 다루고 있는 훈련고, 그리고 국방전체의 전 투태세와 전시(戰時)체제로의 전환을 다루고자 했던 봉수고를 통해 핵심적인 군 사력 건설에 대한 내용을 기능별로 제시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전하는 조선의 병서에는 총 80종이 있다. 이중에서 진법이나 군사훈 련에 관한 것이 정도전의 「진법」등 22종이며, 군사제도에 대한 것이「제승방 략」등 11종이고, 무기체계에 대한 것이 「화포식언해」등 10종, 무예에 대한 것 이「무예제보」등 3종, 전쟁사나 병학에 관한 것이「행군수지」등 34종이다. 이 처럼 한결같이 군사력 운용만을 다루거나 아니면 군사력 건설만을 다루었지 군사 에 대하여 종합적이고 균형된 인식과 체계화를 갖추고 저술된 군사서적은 찾아보 기 어렵다. 이와 같이 대다수의 당시 군사전문가나 장수들이 군사력 운용이나, 군 사력 건설 중 한 부분만 단편적이고 기능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연구했던 것과는 달리 다산은 군사력 운용과 군사력 건설이 균형을 이루는 균형된 인식체계 속에 서 군사사상을 정립하였다. 이러한 다산의 군사사상은 현대적인 관점에서도 놀라 울 정도로 논리적이며 체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2) 「민보의」를 통해 본 다산의 군사사상 「아방비어고」와는 달리「민보의」는 당시의 국방 실정을 토대로 예상되는 위협에 대한 대응전략을 제시한 저서이다. 다산은 유배지인 전라도 강진에서 백 성들의 삶을 통해 문란한 군정으로 군사대비태세의 미비함을 목격한다. 특히 ‘홍 경래의 난 21) ’을 계기로 외적에 대항할 국방력의 부재를 절감하면서 이러한 현실 속에서 실현가능한 대응전략인「민보의」를 저술하여 주장하였다. 「민보의」에서 다산이 주장하는 민보란 민생을 보장하기 위해서 향촌의 소규모 성곽이나 보를 근거로 민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방위전략이다. 즉 민간주도형 향촌자위체제로 요해지에 보를 설치해 이를 작전 거점으로 삼아 전술 효과를 최 대로 증대시키는 것이다. 22) 현재 향토방위개념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당시의 관군의 수가 십만에 불과하고, 군사제도나 교육훈련 면에서 제 기능을 발 휘하지 못했던 것을 고려하면 민보방위를 현재의 향토방위로 국한시키는 것은 당 21) 홍경래의 난 : 19세기 초 홍경래, 우군칙 등의 주도로 평안도에서 일어난 농민항쟁. 당시 관군에게 많은 타격을 가해 피해를 입혔으며, 결국 관군에게 쫒겨 정주성으로 들어가 열 악한 상황에서도 수 십일 동안 성을 지키다가, 땅굴을 파고 들어간 관군에 의해 진압되 었다. 22) 정해은,「조선후기 국토방위전략」(서울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2), p.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