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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사 사 / 기 타 군사연구 제128집 269 정조(1752∼1800) * 조선 22대 왕 가. 정조 임금과의 관계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장현세자) 7)가 당쟁으로 희생되고 자신도 당쟁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음으로써 당쟁의 폐해를 절감하고, 당색에 구애되지 않고 인 물 본위로 관리를 등용하려 하였다. 이러한 정조에게 등용되고 총애를 받은 사람 이 다산이었다. 다산은 정조의 개혁정치를 실현하는 실천가였다. 이는 다산이 수 원성 건축 등의 업적을 통하여 잘 알 수 있다. 정조는 다산의 유생시절 많은 책을 하사하였는데 그 마지막으로 내린 책이 병학통 8)이었고, 병학통은 군사를 다스리고 지휘하는 것과 관련된 서적으로서 언젠가 다산이 군사분야에서도 개혁을 통해 체제 를 확립하려 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조와 다산의 특별한 관계는 정조가 의문의 죽 음을 당하면서 당연히 끝이 나게 된다. 이덕일 9) 의 글에 ‘정조의 죽음은 신세대가 몰락하고 구세 대가 다시 살아나는 반동의 시작이었으며, 개방과 다양성의 문은 닫히고 다시 폐쇄와 획일의 시대 가 도래하게 되었다’고 표현되어 있듯이 정조의 죽음으로 인해서 조선의 개혁을 위한 모든 활동 이 중단되고 오히려 이후 정순왕후의 친정과 노 론이 주도권을 잡게 되어 다산은 정치적으로 제 거되기에 이른 것이다. 역사라는 것은 가정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만약 정조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면 다산의 군사사상은 제도화 되어 실천될 7) 사도세자(장현세자) : 조선의 추존왕(1735∼1762). 노론의 일당전제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모략에 의해 뒤주 속에 갇혀 죽었다. 이복 형인 효장세자가 일찍 죽고, 영조의 나 이 40세가 넘었으므로 태어난 지 1년 만에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세자의 노론의 전횡에 대한 비판과 영조와의 정치적 갈등으로 죽음에 이르게 됨. 이 사건은 이후 노론․ 소론․남인이 얽힌 시파․벽파의 분쟁을 파생시킨 계기가 됨. 8) 병학통 : 조선 후기 정조 때 왕명으로 장지항이 편찬한 군사조련 교범. 조선 후기 병법의 기본과 그 실제를 이해하는데 참고가 된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9) 이덕일 : 역사소설가이며 대학교수, 사단법인 한가람문화연구소 소장 역임. 저서로는 정약 용과 그의 형제들 1․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