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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약용 군사사상의 현대적 의미 268 군사연구 제128집 정심한 이론을 펼친 문예 비평가였다. 6) 여기에 추가하여 「아방비어고」,「민보 의」등을 통해 당시 조선이 놓인 안보정세를 기초로 국방개혁을 통해 전쟁을 대 비하려 했던 군사사상가였다. 물론 다산의 군사사상으로부터 현재 우리에게 주는 직접적인 의미를 찾기 위해 서는 많은 한계에 부딪히는 것은 사실이다. 시대적 측면에서 현재 우리시대와 다 산이 살았던 조선시대가 같을 수 없으며, 다산이 주장하고 저술했던 군사관련 서 적들이 지금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 또한 불가능하고, 다산이 문신(文臣)으로서 군 사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과 다산이「민보의」에서 주장한 전략이나 제도 등은 당대에 시행되지 못했다는 것들이 외형적인 한계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다산의 국방분야 개혁에 대한 주장과 저술이 당시에 왕을 비롯한 국가 지도체제에 받아들여지거나 제도화되어 시행되지는 못했다고는 하지만, 이는 다 산의 국방개혁 관련한 제도나 전략이 현실과 괴리되거나 실천성이 결여되었기 때 문이라기보다는 철저히 정치와 관련된 당파싸움에 의해 제도권에서 벗어난 것이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어찌 보면 다산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남으로써 당시 군(軍)에 대한 많은 부분 이 중국의 견제 속에 있었고, 군(軍)은 왕권유지의 핵심으로 왕의 영역에 속해 신 하나 학자들에게 극히 제한적이고 부분적으로만 다루어졌던 울타리에서 벗어나 군(軍)에 대한 전체적인 제도와 운용 등에 대한 의견을 합리적이고 총체적으로 자유롭게 피력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생각은 조선시대의 병서(兵書)들이 거의 대 부분 무기체계, 전술, 제도 등의 한 부분에 국한된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전체 군(軍)에 대한 역할, 조직, 전략이론 등에 대한 서적이 제한된다는 것을 보 여주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다산의 군사사상은 차별화된 가치를 갖는다고 하 겠다. 그렇다면 다산의 군사사상이 다른 학자들과는 달리 총체성을 갖는다는 것에 추 가하여 객관적인 측면에서 실현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다산의 군(軍)에 대한 인식과 그가 주장했던 국방개혁의 실행 가능성은 두 가지 근거로 설명할 수 있는데, 첫째가 ‘정조 임금과의 관계’이며, 둘째가 ‘신헌의 「민 보집설」로 연계성’이다. 6) 정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서울 : 김영사, 2006) pp.1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