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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사 사 / 기 타 군사연구 제128집 259 관방론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 17세기 초반 관방론의 특징과 한계로 인해 크 게 세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는 기각지세 73)에 의한 관방론이다. 광해 군 후기 사르흐 패전과 정유재란시 산성론의 무용성을 경험한 광해군은 서로의 중심인 평안도를 중심으로 서로 응원하는 형세를 이루기 위한 관방론을 추구하였 다. 읍성이 효과적인가 아니면 산성이 효과적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요해지 에 있는 읍성과 산성이 서로 응원해주는 시스템이 구사되었을 때 방비가 강화되 는 것이고 이는 고래의 한국 전통적인 방어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응원해주는 시 스템이 곽재우의 진주성 1, 2차 전투에서처럼 모든 시기와 장소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응원해주고 해주지 않는 것은 모두 상황과 임무 그리고 적의 위협에 따 라서 정해져야 하며 그 결정은 지휘관의 역량에 달려 있다. 둘째는 선 중심이 아닌 지형 중심의 관방론이다. 적군의 진출은 진출선으로 아 군의 방어진지를 방어선으로 사고하는 생각은 변화되어야 한다. 진출선과 방어선 이 지형을 중심으로 선정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초기 전쟁에서 한강 → 낙동강 → 한강 → 대동강 → 압록강 → 청천강 → 한강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주요 강을 중심으로 전투가 진행될 것이다. 병자호란에서 산성위주의 거 점방어로 적 진출을 지연하고자 하였으나 적 주력 진출을 저지하기 위한 부대(예 를 들어, 고려시대 출정군)가 없어 패배하였고, 마지노선 위주로 방비한 프랑스군 은 전략적 기동예비가 없어 독일의 지헬슈나트 작전에 의하여 패하였다. 지형중 심의 관방이란 시공간적 중앙에 위치하여 융통성을 확보하는 요해지이며, 결정적 전투지점인 요해지에 적의 침입을 격퇴할 수 있도록 배비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정적인 형태가 아닌 동적인 형태의 관방론이다. 청야입보와 개문출격 전술은 한반도 지형에서 나타난 전통적인 전쟁수행방법이다. 성곽에 대한 편견 때문에 한반도 전술은 정적이며 방어 전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축성(요새, 거점)은 방어 전투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공격의 산물이다. 주요 요해지를 바탕으 로 요해지와 요해지 사이에서 적을 차단, 고착하는 것이다. 요해지를 이루는 하나 의 방법으로 성을 선택한 것일 뿐이다. 때로는 무기와 병력에 의한 대형으로 편 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쟁은 인간 대 인간의 투쟁이므로 축성 외에도 병력에 대한 심리적 요소를 간과할 수 없으며 동심원적인 수도중심의 방위는 호란에서와 같이 축차적으로 혹은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이다. 또한 17세기 방어영 체제는 이 73) 기각지세란 사슴을 잡을 때 뒷발과 뿔을 잡는다는 뜻으로 앞뒤에서 적을 몰아침을 이르 는 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