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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초 평안도 및 경기도 관방의 특징 258 군사연구 제128집 로 청나라 황제가 병자호란시 청석동에 이르러 크게 두려워하였는데 지키는 군사 가 없었다고 한다. 71) 임진진은 천연의 요새로 강가에 임해 아주 험하여 지킬 만 한 곳인데 방비되지 않았다. 72) 마치 임진왜란시 조령과 죽령을 배비하지 않고 탄 금대 배수진으로 패한 신립 잘못의 반복이었다. 강화도 양화진 광주 서울 <그림 5> 병자호란 주요 격전지 Ⅴ. 맺 음 말 『만기요람』에서 나타나듯이 관방의 요해지는 잘못된 것이 없으며, 크게 변화 되지 않는다. 한 예로 청천강의 요해지인 안주는 청천강 이남과 이북을 결정짓는 장소이면서도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또한 한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경기만에서는 고구려군이 백제 수도를 침공하는 공격로였고, 고려․몽고 전쟁에서 수년간 전쟁지도부를 유지할 수 있었으며, 임진왜란시 행주대첩이 이루 어졌고, 한국 전쟁시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한 곳이기도 하다. 강과 바다 그리고 산맥은 잘 변화되지 않으므로 요해처는 요해처로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이를 행하는 사람이 적의 위협과 아의 능력에 적절하게 수행하는가가 중요하다. 71)『택리지』팔도총론-경기도, p.147. 회군시에는 개성 동북쪽 백치로 향하였다. 72)『택리지』팔도총론-경기도, p.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