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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초 평안도 및 경기도 관방의 특징 256 군사연구 제128집 안주 의주 창성 선천 곽산 정주 구성 능한산성 <그림 4> 정묘호란 주요 격전지 정묘호란의 평안도 지역 전투에서 광해군이 추진한 서로 응원하는 형세의 관방 론의 효용성과 함께 실행의 어려움을 확인할 수 있다. 서로 응원해주는 형세를 인지한 청군은 서로 응원해주지 못하도록 차단하거나 동시에 요해지를 타격하는 방법으로 조선을 공격하였다. 조선은 압록강 요해지 동시 타격으로 구성에 있는 병력을 증원해주지 못하였지만, 선천․곽산․정주의 동시타격에 따른 각개격파 방지 목적으로 방어가 유리한 능한 산성에 집결하여 대응하였다. 요해지에 있는 성곽이나 병력에 의해 서로 응원해 주는 전통적 방어 시스템으로 開門出擊 전술 을 『병학지남』의 이층진 전법에 활용, 강을 중심으로 적을 지연 및 차단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응원해주는 시스템이 모든 시기와 장소에 적용되는 아니 다. 단적인 예로 곽재우는 1차 진주성 대첩시 200여 명의 응원군을 보내 성중의 군사와 호응하여 승리로 이끌었지만, 2차 진주성 전투에는 적의 형세와 진주의 방비를 보고 “고성(孤城)을 보존할 수 없으니 지원할 수 없다” 하였는데, 곽재우 말대로 2차전은 패전하였다. 66) 응원해주고 해주지 않는 것은 모두 상황과 임무 그리고 적의 위협에 따라서 정해져야 하며 그 결정은 지휘관의 역량에 달려 있 다. 안주성 전투시 평양성 윤훤은 응원의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지원하지 않 았으나, 결국 평양성 방어도 실패하게 된 것이다. 66) 이장희, 『곽재우연구』(서울 : 양영각, 1983), pp.174∼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