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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사 사 / 기 타 군사연구 제128집 253 설치에 따른 수도중심 관방은 고려 및 조선 전기 중앙군 및 지방군이 출정하여 적의 위협이 수도권 도달 이전에 결정적 전투를 수행하는 공세전략과 상반되는 수세 전략으로 심리적 패배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적성 <그림 3> 임진강 / 한강 일대 주요 관방 요컨대, 광해군 후기에 청의 위협 급부상에 따른 훈련도감과 경기만 중심의 보 장처 방비 그리고 4개 방어영 체제의 수도중심 관방을 추구하였다. 하지만 수도 중심 관방은 정치적 측면도 고려되어야 하는 특징을 지닌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이후 약화된 왕권에 대한 왕권 강화 정책 59)중에서 군사관련 분야로 개인 안전보 장 목적으로 훈련도감군, 경기도 4개 방어영 체제에 의한 수도중심 방비로 이어 졌다. 왕 지배 국가에서 통치자의 생존은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60) 왕권 안정을 위한 수도중심 방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광해군 왕권 안정을 위한 이런 노력은 인조반정으로 이어졌다. 인조반정에 참여한 부대가 장단과 이 천 방어영 병력과 훈련도감 군이었던 것이다. 두목이 “많은 군대를 지방에 두면 반란이 있고, 많은 군대를 서울에다 두면 왕위 찬탈자가 생긴다.”라는 말처럼 61) 59) 임란 중에는 송유진, 이몽학의 반란 외에도 옥과, 순창, 김희, 강대수, 고파 등 다양한 반 란으로 왕권에 도전하였으며, 정통성이 약한 광해군으로서는 이를 만회하고자 하는 정책 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60) 니콜로 마키아벨리, 권기돈 역, 『군주론』(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pp.51∼2. 한국 전쟁에서도 이승만과 김정일 전쟁지도부의 도피행각 또한 전쟁지도부의 상징적 의미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준다. 전쟁지도부 도피 행각은 박명림, 『한국1950 : 전쟁과 평화』 (서울 : 나남출판, 2002), pp.171∼4, pp.521∼9 참조. 61) 류형원, 전게서, 권23, 군대편제에 대한 역사적 고찰-군대편제, pp.217∼227. 양주 개성 장단 파주 교하 수원 광주 이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