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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사 사 / 기 타 군사연구 제128집 251 었다. 45) 따라서 조선후기 수도중심 관방의 3가지 차원인 도성방위, 보장처 관방, 수도외곽지역 관방 46)을 중심으로 광해군 시대 관방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도성방위에 관련된 훈련도감 설립은 임진왜란의 산물이다. 훈련도감은 임시방 편 기구였으나, 이후 중앙군의 핵심기관으로 굳혀졌다.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전기 패전 때문에 따른 경험으로 포수 양성, 군제 개혁, 서울 방위 강화의 목적으로 설 립되었다. 47) 포수 양성을 시작으로 살수가 편성되고 그 이후에는 포수, 살수, 사 수로 구성된 삼수병(三手兵) 48) 으로 편제되었다. 지방군에 대한 훈련, 각종 병서 편찬, 군사제도 개혁 등 군사훈련 파급부대로 조선의 정예병이었으며 정예화를 주장하는 광해군의 군사관과 일치하는 부대였다. 하지만 훈련도감은 정치적 속성 이 심화됨에 따라 49) 군사적 기능은 쇠퇴하게 되었다. 보장처(保障處)란 병력을 보전하기 위한 대비책으로 전란시 전략적 거점지역을 의미하므로 50) 전시 전쟁지도부 방호 목적과 유사하다. 전쟁지도부 방호를 위한 보장처 관방은 강화도와 경기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청의 위협이 현실화됨에 따라 한강에 별영을 설치하고 강화도의 주요 요해처인 덕진, 승천, 갑곶진, 월곶, 정포진 등에 관방을 설치하여 51) 유사시 전쟁 지도부를 운용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강화도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의 조세가 모두 손돌목을 45) 도성 고수론 가능 배경은 경제력 발전, 인구 증가, 성리학적 명분, 성곽의 보완과 수성 무기 개발 등에 있다. 상게서, pp.22∼23. 46) 도성방위연구는 강성문, “수도서울 방위에 관한 연구,”『육사논문집』45호(1993), ; 보장처 관련 연구는 소양섭, “17세기 강화도 방어체제의 확립과 진무영의 창설,”『한국사학보』 제13호(2002,9) 수도방위 관련 연구는 이태진, 『조선후기의 정치와 군영제 변천』(서울 : 한국연구원, 1985) ; 이근호 외,『조선후기 수도방위체제』(서울 : 서울시립대부설 한국학 연구소, 1998) ; 오종록, “조선후기 수도방위체제에 대한 일고찰,”『사총』제33호(1998) ; 노재민, “조선후기 ‘수도방위체제’의 군사적 고찰-17C초〜18C초의 방위체제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국방대학교, 2006) 등으로 3가지 차원에서 인조시대 이후 연구로 활성화 되어 있다. 47) 김종수, 『조선후기 중앙군제 연구』(서울 : 혜안, 2003), pp.71∼4. 48) 조총의 砲手, 창검의 殺手, 궁시의 射手로 구성되는데, 이는 우리 전래의 射手에 『기효 신서』의 殺手와 砲手을 포함시킨 병을 삼수병이라고 한다. 49) 훈련도감은 왕권의 확립, 강화에 기여하고 집권세력의 정치질서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김종수, 『조선후기 중앙군제연구』,전게서, p.230. 50) 이근호 외,『조선후기의 수도방위체제』(서울 : 서울시립대학교 부설 서울학연구소, 1998), pp.17∼8. 51) 『광해군일기』권80, 광해군 6년 7월 2일, 11일 ; 권118, 광해군 9년 8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