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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초 평안도 및 경기도 관방의 특징 248 군사연구 제128집 종심위주 방어 중에서도 평안도를 중심으로 방비가 진행되었다. 29) 청의 공격 예상로는 함경도를 이용하는 경로와 평안도를 이용하는 경로가 있는데, 함경도 이용 경로는 마천령, 철령 등 고개와 협소한 애로지역이 많아 대규모 부대 기동 이 제한되기 때문에 평안도 지역이 적 접근 예상로였으며, 황해도 지역은 방어가 제한되는 지형 특성 때문에 30) 평안도가 관방의 중심이 되었다. 평안도 관방은 광해군 초기 청의 위협이 미약하였기 때문에 조선 전기 양성지 가 주장한 의주, 삭주, 강계, 희천, 영변, 안주, 평양 등 7개소 중에서 전쟁의 경험 을 통해 류성룡이 주장한 정주, 안주, 평양, 성천, 영변, 구성 등을 중심으로 방비 가 진행되었다. 31) 청의 무순성 함락 이후 위협이 가중되자 모든 평안도 관방에 대한 배비가 제한되었다. 따라서 청의 기병이 험한 지형과 수전에 약함을 인지한 조선은 함경도의 마천령과 철령, 평안도의 청천강, 대동강을 중심으로 방비가 진 행되었다. 특히 평안도에서는 안주 방어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32) 왜냐하면 안주는 곽산의 능한산성으로 이를 성원하여 평양과 영변을 지킬 수 있는 요해지 로 보았기 때문이다. 33) 안주는 西路(의주-선천-안주)와 東路(창성-구성-안주)의 합류 지점으로 청천강 주요 요해지였다. 전쟁사에서도 거란의 침입에 고려 출정 군(出征軍)이 안주에 배치되어 구성(귀주) 일대 봉산군 전투와 청천강 하구 안융 진에서 승리함에 따라 청천강 선을 지킬 수 있었다. 34) 안주 외에도 청의 위협이 심화됨에 따라, 청이 수도를 향해 곧장 공격할 수 있으므로 평양 방비를 강조하 였다. 35) 평양성은 내부에 산이 있고 외부에 강이 있어 천연의 요새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29) 『광해군일기』권23, 광해군 1년 12월 19일. 30) 『반계수록』권21-군사제도-각도의 병영, 진, 진관, 4권-pp.76∼7. 31) 『광해군일기』권7, 광해군 즉위년 8월 17일; 권19, 광해군 1년 8월 6일 ; 권39, 광해군 3년 3월 29일. 32) 『광해군일기』권112, 광해군 9년 2월 4일; 권127, 광해군 10년 윤4월 20일 ; 권129, 광해군 10년 6월 6일조에서 안주목사가 방어사를 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3) 『광해군일기』권128, 광해군 10년 5월 29일. 34) 안주섭, 『고려․거란 전쟁』(서울 : 경인문화사, 2003), pp.90∼115. 35) 『광해군일기』권172, 광해군 13년 12월 29일 ; 권173, 광해군 14년 1월 5일 ; 권173, 광해군 14년 1월 24일, 27일 ; 권176, 광해군 14년 4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