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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사 사 / 기 타 군사연구 제128집 243 명(明)이 새로운 패권도전국인 청(淸, 후금) 9)으로부터 도전을 받아 세계질서의 변 화가 도래되었다. 명은 이이제이 10) 책략의 일환으로 조선에 파병을 요청하고 조 명연합군이 청의 수도에 진격하게 되는데, 청의 내선작전(內線作戰) 11)으로 명은 패전한다. 12) 역사학자들은 바로 이 사르흐 전투가 명청 교체의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세계질서의 변화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 명과 동맹을 유지할 것인지, 신흥 세력인 청과 새로운 동맹을 맺을 것인지 논의되는 혼란의 시대였다. 광해군 은 기민한 외교정책과 自强策으로 국방을 강화하고자 하였고 그 수단 중의 하나 가 관방이었다. 13) 17세기 초반 대내외 정세는 임진왜란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부상하는 청의 위협에 대응하는 시대였다. 임진왜란으로 군사력이 소진된 상태에서 조선 전기 군사제도로 복구되지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임시방편 형태 의 군사력 건설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군사력 건설의 속도는 청의 위협에 대응할 정도로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따라서 외교 전략과 주요 관방에 의한 군사력 배비 로 청의 위협에 대응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9) 17세기 초반은 청은 건주여진, 후금, 청으로 그 국호가 변화되어 왔다. 누르하치는 1616년 도까지는 국호를 세우지 못하고 건주여진 부족장이었으며, 1616년에 후금으로, 1636년도에 청으로 국호를 세웠다. 하지만 독자의 이해를 용이케 하기 위해 모두 청으로 용어를 통일 정리하였다. 10) 이이제이(以夷制夷)는 중국의 전통적인 대외정책으로 귀순한 외족을 이용하여 대항하게 하는 以夷伐夷, 종속관계가 없는 민족이나 국가와 손을 잡고 대항하게 하는 聯以夷制夷, 기미정책에 의한 以夷治夷, 상대의 내부적 모순과 갈등을 조장시켜 그들의 단결과 통일 을 방해하고 공격까지 유발시키는 分化夷狄以制夷, 타민족의 장기를 배워 역으로 사용 제압하는 師夷長技夷制夷의 다섯 가지로 표현된다. 김순규, 『중공군의 전략전술 변천 사』(서울 : 국방군사연구소, 1996), pp.17∼20. 11) 내선작전이란 수개 방향의 외부로부터 구심적으로 아군을 향하여 작전을 실시하는 적에 대하여 아군의 병참선을 내부에 두고 실시하는 작전을 말한다. 청은 전체의 힘을 결합하 여 4로(좌익북로군, 좌익중로군, 우익중로군, 우익남로군)에서 분진합격하는 명의 공격에 대하여 축차적으로 대응하여 승리하였다. 12) 사르흐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일본 육전사 연구 보급회 편, 육군 대학 역, 『명과 청의 결전』(육군대학, 2000) 참조 13) 광해군 11년 다음의 언급에 잘 나타나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위한 계책으로는 군신 상하가 마땅히 잡다한 일은 버리고 오로지 부강에만 힘써야 할 것이다. (중간생략) 성지 와 척후 등을 모두 정비해야만 믿을 곳이 있어서 위급한 때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중간생략) 대국 섬기는 성의를 더욱 다하여 붙들어 잡는 계책을 조금도 해이하게 하지 말고 한창 기세가 왕성한 적을 잘 미봉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국가를 보전할 수 있는 좋 은 계책이다.” 『광해군일기』권139, 광해군 11년 4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