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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초 평안도 및 경기도 관방의 특징 242 군사연구 제128집 방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시대에 지금과 같이 국경선을 중심으로 방어의 주병력이 배비된 것은 아니다. 국제정세, 적 위협 그리고 국력(군사력)에 따라 배 비 중점은 변화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주결전이 이루어지는, 즉 어디에서 군사력 을 운용할 것인지를 정하게 되는 관방은 그 시대적 특징에 구속받게 된다. 또한 관방이란 개념은 요새, 거점과 같이 단일 요해처에 대한 방비가 아닌 요새와 요 새를 두고 이루어지는 체계의 성격이 강하여 추상적인 개념이다. 1. 17세기 초반 대내외 정세 17세기 초반은 암흑과 혼란의 시기였다. 조선은 명의 파병으로 임진왜란(1592) 에서 승리하였다. 하지만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피폐되었으며, 조선과 명의 관 계는 ‘冊封-朝貢 체제’의 전통적 관계에 ‘再造之恩’이라는 새로운 인식으로 질 높 은 동맹관계가 형성되었다. 7) 마치 한국전쟁이후 피폐해진 한국 사회상과 미국 참 전에 따른 한미동맹 강화기와 유사하다. 임진왜란은 전례 없는 대전란으로 투키 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세계전쟁으로 인식한 것처럼, 조선도 임진왜란은 1차 세계대전과 같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국전쟁 이후 전쟁의 경험을 통해 새 로운 전쟁에 대비하는 것과 유사하게 조선도 임진왜란을 통한 경험의 지식으로 군사제도, 전법(전술) 등에 대한 군사개혁의 시기를 맞이하였다. 8) 세계대전과 같은 임진왜란의 충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패권국인 7) ‘책봉-조공 체제’란 사대관계는 속국을 의미하지 않으며 패권과 군사동맹의 성격을 지닌 다. 최동희, 『조선의 외교정책』(파주 : 집문당, 2004), pp.28∼40. ‘재조지은’ 이란 왜란 당 시 명이 ‘조선이 구하여 나라를 다시 세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명기,『임진왜란과 한중 관계』p.407. 8) 역사학계는 군사제도는 중앙군과 훈련도감과 5군영, 지방군인 속오군에 대한 연구가 진행 되어 왔으며, 전술연구는 주요 병서를 바탕으로 선험적인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군사제도 에 관련된 주요 연구 성과는 다음과 같다. 차문섭, 『조선시대군제연구』(서울 : 단대출판 부, 1973), 차문섭, 『조선시대 군사관계 연구』(서울 : 단대출판부, 1996), 최효식, 『조선 후기 군제사 연구』(서울 : 서신원, 1995), 서태원, 『조선후기 지방군제 연구』(서울 : 혜 안, 1995), 김우철, 『조선후기 지방군제사』(서울 : 경인문화사, 2000), 김종수, 『조선후기 중앙군제 연구』(서울 : 혜안, 2003) 병서와 전술에 관련된 주요 연구 성과는 다음과 같다. 노영구, “임진왜란 이후의 전법의 추이와 무예서의 간행,”『한국문화』27(2001), 노영구, “조선후기 병서와 전법의 연구,” (박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2002), 정해은, 『한국 전통병 서의 이해』(서울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4), 나영일 외, 『조선 중기 무예서 연구』 (서울 :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