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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사 사 / 기 타 군사연구 제128집 227 축조하는 한편 수군을 배치했다는 사실과 광개토대왕 16년에 고구려 수군이 백제 서해안에 대거 기습 상륙한 사실, 그리고 장수왕이 백제를 공략했을 당시 배를 타고 백제의 수도 한성 이남지역을 급습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일찍부터 강 력한 수군을 보유했던 것 같다. 백제는 일찍이 항해기술이 발달하여 멀리 중국의 요서지방과 일본, 동남아 지 역까지 활동범위를 넓혔으며, 해외의 여러 지역에 교역 거점을 마련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수군도 발전시켰으리라 본다. 통일신라는 문무왕대(661~681)에 병선 37) 100척을 가지고 서해에서 활동한 기 록이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난 이후의 해상활동은 그 양상이 크게 달라 졌는데, 통일 이전에는 고구려․백제와 대항하기 위한 수군활동이 주류를 이룬데 반해, 통일을 성취하고 나서는 그 해상활동이 경제․문화적인 방향으로 크게 전 환되었다. 이로 인해 공무역에 해당하는 조운선과 사무역에 종사하는 상선의 발 달이 주가 되었다. 38) 3. 무기체계와 주요 전쟁과의 관계 분석 가. 고구려와 수(隨)의 전쟁 1) 전쟁의 경과 고구려는 이미 4세기 말 광개토대왕을 시작으로 장수왕을 거치는 6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영토확장 정책을 추진한 결과, 한민족 역사상 최대의 판도를 형성한 영토국가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6세기 말경에 중국대륙을 통일한 수나라가 통일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군사력을 이용 고구려를 침공하 여 영토를 확장할 야욕을 키워가고 있는 상황으로 변화되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즉, 양국 간에 긴장이 확대되었고, 급기야 고구려의 영양왕이 수나 라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598년 요서지방의 거점도시인 영주를 선제공격하였 37) 배의 종류는 사용목적에 따라 군용선과 비군용선(또는 해운선)으로 대별된다. 그 중 군용선은 직접 전투에 임하는 무장선과 군인의 수송 등을 담당하는 비무장선으 로 구분된다. 무장선을 전선(戰船), 병선(兵船) 등으로 부르기도 하나, 조선 후기에 오면 고유명사로 사용된다. 김재근,「한국의 배」(서울 :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4), p.36. 38) 상게서, p.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