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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사 사 / 기 타 군사연구 제128집 225 수 있게 소의 생가죽을 붙이기도 하였다.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로부터 청나라 말기까지 운제를 많이 사용하였으며, 우리나라는 고려시대까지 사용한 기록이 보인다. 충차(衝車)는 큰 쇠를 그 수레채의 양쪽 끝에 달고 말에는 갑옷을 입히고 수레 에는 무기를 장착하여 적의 성벽이나 성문에 부딪혀 파괴하기 위한 전투기재였다. [운제] [충차] <그림 8> 삼국시대 운제와 충차 포노(砲弩)는 신라 때에 만들었다는 무기로서 성에 고정시키고 사용한 투석기 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진흥왕 19년(558)에 신득이라는 사람이 만들어 왕에게 바치니 그것을 성 위에 설치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또 태종 무열왕 8년(661)에 포노를 설치하여 성을 지켰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유사한 무기로 중국 당나라때 사용된 차노(車弩)는 무게가 860kg이나 된 강력한 노였으며, 한꺼번에 일곱 개의 화살을 발사할 수 있었는데, 가운데 있는 화살은 특히 커서 촉의 길이만 22cm였고, 최대 사정거리는 1km에 달하였다고 한다. 철질려(鐵蒺藜)는 성을 지키는데 쓰인 전투기재의 일종으로서, 쇠로 만든 가시 덩굴 비슷한 것으로 마름쇠라고 부르기도 한다. 쇠를 삼각형으로 만들어 그 한가 운데에 구멍을 뚫고 여기에 나무를 꿰어 몇 개를 연결시켰던 것이다. 『삼국사 기』에 의하면 태종 무열왕 8년(661) 고구려군이 신라의 북한산성 공격 시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