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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사 사 / 기 타 군사연구 제128집 219 2) 무기체계측면의 전략적 평가 고조선이 초기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패수라는 천연장애물과 그동안 개발한 철제무기를 기초로 공세적인 전술을 구사한 결과이다. 이후에도 수도 왕검성에서 한의 수륙군과 대치하여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는바, 이 공방전 에서 효과적인 수성전술로 한군을 물리쳤다. 한군이 공격 시 고조선은 주로 쇠뇌와 궁시 사격으로 원거리에서 접근하는 적 에게 많은 타격을 입혔다. 특히 고조선의 쇠뇌는 궁시의 원리를 발전시켜 발사장 치를 부착하여 원거리 사격에 용이하도록 개발한 장병기로서, 공성전을 전개하는 한나라의 군에게 가장 위협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면 기록에 의하면 당시 한나라의 군은 고조선의 쇠뇌와 같이 사거리가 긴 우수한 쇠뇌를 보유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우리 민족의 우수한 쇠뇌에 관심을 보인 사실을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수백 년이 경과한 7세기 후반의 이른바 삼국시대 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와 동맹관계에 있던 당의 태종이 신라의 쇠뇌 명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구진천을 직접 불러서 쇠뇌를 제작하도록 위협하였을 때 이런저런 핑계로 쇠뇌 제작기술을 유출하지 않았던 사례가 있었다. 25) 또한 고조선의 우수한 활과 화살은 역대 중국에도 널리 알려져, 사신이 예물로 가져가기도 하고, 개인 애장품으로 수출되는 등 성능을 인정받고 있던 무기였다.26) 이러한 점을 비추어 볼 때 고조선이 보유하고 있었던 무기는 현존하는 자료가 제한되어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당시 한군이 보유하고 있었던 무기에 비해 상대 적으로 우수하였던 것으로 보여 지며, 단지 전쟁에 패하게 된 원인은 고조선 지 도자들 간에 내부 분란에 의해서 기인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Ⅳ. 삼국시대 무기체계 및 수(隨)ㆍ당(唐)과의 전쟁 1. 국내외 정세 고구려는 부여족 계통의 지배세력이 지금의 만주 환인지방에서 성장하기 시작 25)「삼국사기」권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9년(669). 26) 윤내현, “고조선과 중국의 교섭”「고조선 연구」(서울 : 일지사, 1994), pp.771~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