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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사 사 / 기 타 군사연구 제128집 195 「문답(問答)」등 5편이었다. 이 중 「서언」전체와 「전감」일부의 내용만이 전해질 뿐이다. 35) 그런 만큼 구체적이고 전체적인 내용과 성격 등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서언」과 「전감」, 「신문서」와 「청취서」등을 통하여 ‘동양평 화론’ 구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서언」은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글을 쓰게 된 목적에 해당된다. 「전감」은 선인들의 교훈적인 일을 거울삼아 스스로 경계하고 근신하자는 내용이었다. 「현 상」은 당시 상황과 정세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려 했다. 「복선」은 향후 발생할 사 건에 대한 대비책으로서 그와 관련된 일을 예측하는 문제였다. 즉 동양평화를 지 키기 위한 방책을 서술하려고 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답」은 어떤 문제에 대한 물음과 대답으로서 영구적인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36) 저술 목적은 「서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지금 서양세력이 동양으로 뻗쳐오는 환난을 동양인종이 일치단결해서 극력 방어해야 함이 제일의 상책임은 비록 어린아이 일지라도 익히 아는 일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일본은 이러한 순연한 형세를 돌아보지 않고 같은 인종인 이웃나라를 깎고 우의(友誼)를 끊어 스스로 방휼(蚌鷸)의 형세를 만들어 어부(漁夫)를 기리는 듯하는가. 한청 양국인 의 소망이 크게 절단되어 버렸다. 만약 정략을 고치지 않고 핍박(逼迫)이 날로 심 해진다면 부득이 차라리 다른 인종에게 망할지언정 차마 같은 인종에게 욕을 당 하지 않겠다는 의론(議論)이 한청 양국인의 폐부(肺腑)에서 용솟음쳐서 상하 일 체가 되어 스스로 백인의 앞잡이가 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한 형세이다.…(중 략)…그래서 동양평화를 위한 의전(義戰)을 하얼빈에서 개전하고 담판하는 자리 를 여순구(旅順口)에 정했으며, 이어 동양평화 문제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는 바이 니 제공(諸公)은 눈으로 깊이 살필지어다.” 37)라면서 서양세력 침략을 막는 대비 책 강구가 목적임을 알 수 있다.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등박문을 처단한 의전(義戰)은 하얼빈에서 행하고, 이와 같은 당위성을 알리는 장소로 여순 을 선택했다는 논리였다. 궁극적인 의도는 일제의 침략정책을 변화시켜 동양3국 의 상호 협력에 의한 ‘세력 균형’에 있었다. 38) 이처럼 동양평화론 은 앞으로 예상되는 서구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35) 국사편찬위원회, 「보고서」, 「한국독립운동사자료 7, 517쪽. 36) 김호일, 「구한말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연구」, 중앙사론 10․11, 중앙사학연구회, 1998. 37) 동아일보 1979년 9월 19일 「안중근의사 동양평화론」. 38) 신용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이등박문의 ‘극동평화론’」, 안중근과 그 시대 , 5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