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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역 사 및 역 사 일 반 군사연구 제128집 21 이 베트남전에서 개발한 독자적 전술전기를 전수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아울러 한국군 교수단 초청 서한도 함께 보내왔다. 박정희 대통령은 즉각 육군본부에 한 국군 교수단 자유 중국 파견을 지시했다. 1968년 3월 육군본부는 자유 중국에 파견할 교수단을 구성하였는데 맹호사단 초대 참모장을 역임한 최영구 준장을 단장으로 하여 투코 전투의 당시 대대장 최 병수 대령과 야간침투작전의 당시 대대장 박경석 대령(필자)으로 정하고 자유 중 국에 파견하였다. 아마 한국군이 독자 개발한 전술을 외국군에게 전수한 경우는 건군 이후 최초라고 생각한다. 자유 중국에 도착한 교수단은 3군 대학을 비롯하여 전체 자유 중국군 영관급 및 장관급 장교에게 강의했다. 수강 대상의 전체 고급장교들은 단 한 사람도 결 강하지 않았다고 당시 장경국 국방부장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필자는 이때 얼마 나 대한민국의 육군 장교임을 영광스럽게 생각했는지 강의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몰래 닦기도 하였다. 이러한 영광의 빛 뒤에는 그림자도 있었다. 베트남전 한국군 참전이 중반을 넘 어서자 차츰 기강이 해이되면서 첫 전투부대 파병시의 당당한 기상은 빛바래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미군이 곳곳에서 수세로 몰리는 현상이 생기면서 우리도 철 수의 날만 손꼽고 있었다. 더구나 주월 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중장이 귀국하고 새 사령관이 부임하자 모든 형태의 부대 운영과 리더십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 맹호사단 기갑연대의 안캐패스(Ankhe Pass)전투는 치열한 전투로 확 대되면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치욕을 맞았다. 안캐패스란 빈딩성의 성도인 퀴 논에서 크메르 국경까지 관통하는 19번 도로 중간지점에 있는 고개를 일컫는다. 이 일대의 주요지형은 안캐패스 정상인 638고지를 비롯하여 553고지, 544고지 등 의 높고 낮은 고지군을 형성했다. 638고지는 안캐패스 일대를 환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요지로서 19번 도로의 안전 확보를 위해서는 절대적인 역할을 해왔다. 기갑연대 1중대는 중대전술기지를 이 고지에 설치하지 않고 그 하단부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에 설치했다. 이게 큰 화근을 불렀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중대기지 가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기 전 무려 1개월 전부터 중대전술기지 바로 눈앞 638고 지 정상에 월맹군이 완강한 진지를 구축한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수색정찰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공격을 받자 연대와 사단에서는 증원 병력을 투입한다는 것이 건제를 무시하고 병력을 축차투입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