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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그 의미 186 군사연구 제128집 I. 머 리 말 국권회복과 조국광복을 위한 우리 민족운동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 려운 혈전(血戰)의 연속이었다. 특히 올해는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 는 사건들이 유난히 많은 한 해임에 틀림없다. 선조들의 뜨거운 조국애와 나라사 랑 정신을 기리고 선양하기 위한 각종 행사와 학술대회는 개최되었거나 현재 진 행 중에 있다. 1) 이는 학술사적 연구 심화와 더불어 역사적인 의미를 재발견하는 역사교육 현장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안중근 의사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이 무엇인지를 실천한 독립운동사상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의거 직후부터 국내는 물론 중국․러시아․대만의 학 자 등은 그의 의거에 대해 높은 관심과 아울러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연해주 한 인들은 ‘안중근유족구제공동회(安重根遺族救濟公同會)’를 조직하는 등 유가족을 위한 의연금 모집에 착수하였다. 2) 그의 사후 유가족에 대한 지원은 지속되었다. 그의 투쟁정신은 일제강점기 민족정체성이 크게 훼손되는 상황을 반전시키는 요 인이었다. 3) 민족의식이나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기폭제’는 그의 숭고한 의거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강우규의거(姜宇奎義擧)를 시발로 국내․외에서 전개된 ‘본격적인’ 의열투쟁은 가장 효과적인 독립전쟁 방략 중 하나로서 채택되었다. 4) 의열단(義烈 團)․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으로 대표되는 의열단체는 조선총독 등 고위층 식민 통치자나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植株式會社), 경찰서 등 식민통치기관은 물론 친일반민족행위자 등을 응징함으로써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만천하에 알렸다. 나아가 한중 연대는 물론 대만, 베트남 등 일제 식민지배하에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 1) 동아일보 2009년 8월 26일 「기독교로 무장한 강우규 의사」: 조선일보 2009년 10월 30일 「안중근이 우리에게 남긴 말」․「의거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해야」: 한국일보 2009년 10월 28일 「영상과 조명으로 현장감 … 그때 그 총성 들리는 듯」. 2) 국사편찬위원회, 주한일본공사관기록-재로한인관계(명치 43년 1월 20일) , 1910. 3) 신한민보 1916년 8월 24일 「덕국에셔 간신히 살아 도라온 한인」, 10월 5일 「안즁근뎐」, 1939년 5월 4일 「안즁근의사」, 1941년 11월 13일 「유훈, 안중근의사 유언」, 1943년 3월 25 일 「추도문」. 4) 김영범, 의열투쟁-1920년대를 중심으로 Ⅰ,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기념관 한국 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