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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쟁 사 군사연구 제128집 177 정찰을 하던 중 1소대장으로부터 통나무 뒤에 숨어서 망을 보던 160cm 작은 키 의 베트콩을 생포하고 권총도 1정 획득하였다는 보고를 받았다. 산속에서 활동하 던 베트콩이기에 먹지도 못하고 피로에 치친 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이러한 상황을 즉시 상급부대에 보고했고 보고를 받은 연대 정보주임이 군사정 보대 신문요원과 함께 출동하여 포로를 인수하여 갔다. 다음날 아침 그 포로를 데리고 갈 테니 대동하고 다시 수색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았다. 어제 후송되었던 포로는 입술이 터지고 겁에 질린 표정을 봐서는 신문과정에서 매우 고통이 컸음 을 즉시 알 수 있었다. 다시 하달된 명령에 따라 포로를 앞세우고 수색정찰을 하던 중 고지의 중하부 에 이르렀을 때 포로가 더 이상 진전하지 않고 우물쭈물 하였다. 그런데 이때 주 변에 숨어있던 베트콩 4명이 튀어나와 도주를 시도했고 우리는 즉각 응사하여 1 명은 사살하고 2명은 생포하였으며 1명은 도주하였다. 이들은 푸엔성 베트콩의 고급간부로 38구경 중국제 권총(일명 떼떼권총)을 차고 있었다. 부상을 입은 1명 의 적은 약 30대 후반의 여성으로 대퇴부의 큰 상처로 뼈도 거의 달아나고 앉거 나 걷지도 못하였으며 출혈도 몹시 심한 상태였다. 나는 부상자가 적이지만 인간적 고뇌를 하여야 했다. 부상자를 후송하려면 300 고지 정상에 위치한 헬기장까지 4명의 병력과 후송병력의 안전을 위해 별도의 경 계병을 편성하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부여된 임무수행을 위해 어떻게 해야 될 지 고민 하던 중에 위생병이 건의하기를 부상자의 상태를 봐서는 산위 헬기착륙장 까지 이송과정에서 사망한다는 조언에 현재 작전임무를 고려 우선 응급조치 후 현재의 위치에 부상자를 놓고 작전 종료 후에 만약 살아있으면 후송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많이 아프냐고? 그녀는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작전 종료 후 그녀는 사망해 있었고 나는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 그 후 생포한 베트콩 간부한테 확인하니 푸엔성 베트콩본부의 간호부장이었다고 진술을 받았고 44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며 인간적인 고뇌로 남아 있음을 어찌 부인할 수 있으랴. 5. 전투의 승리는 정신무장이 절대적 평상시 교육훈련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말이 있고, 배운대로 싸운다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