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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참전에 대한 회고 170 군사연구 제128집 I. 베트남전쟁 배경 1. 베트남의 독립 베트남 전쟁은 프랑스로부터 베트남의 독립을 추구하는 민족주의 정당이 1941년 조직되어 공산주의 정당임을 표방하였고, 1945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 복한지 2개월도 지나지 않아 베트남 독립동맹의 지도자 호치민은 베트남이 프랑 스로부터 독립했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에서 자신들의 지배권을 다시 주장하였고, 이에 반 발한 베트남 독립동맹군과 프랑스군 사이에 1946년 전쟁이 시작되어 1954년 디엔 비엔푸 전투에서 호치민이 이끄는 독립동맹군이 승리함으로써 8년간의 전쟁은 끝 을 맺었다. 제네바협정에 의거 독립동맹군측과 프랑스군은 휴전하고, 인도차이나 에 남아있는 프랑스군은 즉각 철수하며, 인도차이나 3개국은 각각의 선거를 통하 여 대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7월 20일까지 양측이 합의되었다. 이 합의에 따라 위도북위 17도 선에서 북쪽은 “호치민” 정부가 통치하고 남쪽 은 프랑스가 세운 “바오다이” 체제를 유지하되 2년 후인 1956년 7월까지 국제감 시위원회의 감독 아래 남북은 자유 총선거를 통해서 통일정부를 수립한다는 내용 은 프랑스의 항복과 같은 내용으로서 프랑스로부터 독립되면서 제1차 베트남 전 쟁은 호치민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2. 남북으로 분단된 베트남의 국내실태 1954년 10월 북베트남에서 철수하는 프랑스군의 마지막 부대가 “하노이” 작전 통제권을 보응웬 지압장군에게 넘겨줌으로써 프랑스의 지배는 끝맺었고 프랑스군 과 함께 80만 명 정도의 베트남 민간인은 남쪽으로 이동했으며 그들 대부분은 가 톨릭교도들과 프랑스정부에 협력했던 관리와 군인이었다. 반면 17도선 남쪽에서 활동하던 호찌민군대는 북으로 이동했지만 약 6,000여 명의 공산주의 핵심요원들은 잔류를 택했고 남쪽에서 그들 나름대로 조직화하여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으면서 남쪽 곳곳에서 농민봉기를 야기했으며, 남베트남 정 부는 북에서 내려온 가톨릭세력과 정권을 장악한 세력에 의하여 계속되는 권력투 쟁과 쿠데타 속에서 매우 혼란스러웠으며 대부분 불교가 주민의 종교였으나 정부 로부터 도외시 되는 등 불교계는 가톨릭 세력과 불화 및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