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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전쟁시 케산전투 및 안케고개전투 교훈 164 군사연구 제128집 셋째, 전장군기의 중요성 및 전투력의 수준 유지이다. 당시 장기간 전투와 철군 분위기로 인해 전투간 전장군기가 일부 문란했다. 즉 적과 교전시 전장이탈, 명령 불복종, 전과과장 보고 행위가 발생한 것은 되짚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638고지를 점령 한 적이 강력한 진지를 편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전장정리의 소홀함에서 비롯 됐다. 즉 제1중대 1개 소대규모가 점령하고 있다가 1971년 8월에 진지를 폐쇄하 고 철수시 많은 축성자재를 그대로 방치했다. 이 자재를 적이 활용하여 진지를 요새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전 장기화에 따른 전투감각의 상실되어 위장, 개인화기 사격술 훈련 부재, 경계 태만 등 현상이 참전자 증언에서 알 수 있다. 주요지역 선점부대나 경 계부대는 주기적인 부대교대와 임무전환을 통해 전투력을 지속적으로 발휘 가능 하도록 해야 한다. 넷째, 전사연구의 생활화와 전투상보 작성 등의 중요성을 재인식해야 한다. 예 를 들어 전투간 식수부족에 대한 재보급으로 105밀리 탄통을 활용한 사례는 아직 도 산악지형으로 형성된 우리의 전장 환경을 고려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임에도 야전에서의 활용도는 거의 없다. 그리고 중대급 이하 제대의 전투상보의 작성 유 지를 위한 관심도 필요하다. 야전에서 적용실태는 매우 미흡한 실정이므로 각종 훈련시 필요하다고 본다. 한편, 북베트남군이 전력을 다해 마지막 승부를 겨룬 춘계공세의 결과로 북베 트남군은 투입된 전투부대는 물론 국내의 주요 산업시설까지 파괴되는 엄청난 피 해를 자초하였다. 23) 그러나 1968년의 구정공세처럼 심리적인 성과가 있었다. 즉 미군의 막강한 화력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공세를 취하고 끝까지 도로차단 지역 을 고수하는 북베트남군에 대하여 남베트남군은 두려움을 갖게 되고 미군의 항공 지원이 없으면 이길 수 없다는 패배의식을 남베트남군은 물론 남베트남국민들에 게까지 심어주었다. 24) 미국 또한 형식적인 전쟁 종결을 위해 1973년 1월 28일에 23) 춘계공세의 주요 전투로 남부지역에서는 캄보디아와 라오스 국경에서 공격태세를 갖 추고 있던 약 5만 명의 북베트남군 병력들은 4월 5일에 사이공 북부 빈롱(Binh Long) 성에 대규모로 맹렬히 공격을 실시했으며, 4월 7일에는 락닌(Loc Ninh)을 탈취하 고 4월 13일에는 안락(An Loc)의 절반을 확보했다. 중부 해안지역에서 북베트남군은 남 베트남을 양분시키기 위하여 빈딘(Binh Dinh)을 4월 18일에 공격, 북베트남군 4개 사단 이 4월 22일~29일에 중부 고원지대에 있는 콘둠(Kontume)성, 닥투(Dak To)를 탈취했 다. 이후 2차례의 광트리(Quan Tri) 전투 등 7월까지 계속되었다. 앞의 책,『미국의 월남 전 전략』, p.302. 24) 앞의 책,『월남전쟁』, p.351. 인용시 월맹은 북베트남, 월남은 남베트남으로 표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