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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쟁 사 군사연구 제128집 163 도출된 교훈들은 그동안 편찬된 각종 전사와 참전자 증언, 전례집에 나타난 내용 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았다. 첫째, 전장감시 및 적정을 파악하는 데 소홀했다. 이미 다른 지역에서는 3월 30 일을 기해 대규모의 춘계공세가 감행되었음에도 공격 징후에 대한 정보전파 및 자체 첩보수집노력에 대한 의문점이 생긴다. 21) 그리고 최초 제1중대 기지가 피습 후 적정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결여된 가운데 대대작전을 실시했으나 적의 저항 은 완강했다. 이후 사단은 투입된 적의 규모를 연대급으로 판단하고 4월 18일부 터 제1연대 2개 중대와 제26연대 3개 중대를 증원했다. 그러나 당시 안케고개 일 대에 투입된 적은 북베트남군 제3사단 12연대로 빈딘성 출신자가 대부분이며 당 성이 강하고 고도의 군사훈련을 받은 정예부대로 알려졌다. 병력규모는 3개 대대 (+) 규모로 1,565명이었다. 22) 이 정보를 남베트남군 제22사단 47연대로부터 4월 14일에 통보를 받은 것은 당시 상호 정보교류협조가 매우 허술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목표선정의 부적절 및 병력의 축차 투입으로 전투력을 분산하고 공격 기 세를 유지하지 못했다. 638고지는 19번 도로 보급로상의 애로지역을 결정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중요 감제고지인데도 불구하고 아군은 사전에 강력한 통제대책을 강구하는데 소홀하였다. 병력절약을 위해 점령이 불가시 주기적인 수색정찰을 통 해 적 침투 징후를 포착해야 함에도 수색정찰을 실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안케전투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산악지형에서 동일한 방향에 병력을 축 차적으로 투입한 것이다. 최초 적의 규모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다. 이러한 가운 데 638고지 정면으로 제3중대-수색중대-제2중대-제8중대 등 중대단위로 병력을 투입한 것은 전투력의 분산운용, 공격 기세를 유지하지 않은 매우 무모한 병력운 용이었다. 작전의 성공은 적이 예기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 기습을 달성하는데 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 18일, 제8중대를 후사면으로 투입했으나 제3중대와 수 색중대 공격이 고착되어 철수시킨 점이 아쉽다. 4월 24일, 제4중대와 제9중대의 공격을 조기에 실시했다면 목표를 조기에 확보하고 전투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 을 것이다. 21) 이에 대해 수도사단장은 남베트남군 제2군단의 전황을 분석한 결과, 가까운 시일내에 적 의 공격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기갑연대가 4월 9일부터 실시할 예정이었던 키로(Ky Lo)계곡에 대한 번개24호작전을 보류시켰다. 국방부,『주월한국군전사』, 제10권, 전사편찬 위원회, 1985, p.176. 22) 작전에 영향을 미친 적은 1,565명이며, 증원 가능한 병력은 715명으로서 총 2,280명으로 판단되었다. 앞의 책, pp.177~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