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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전쟁시 케산전투 및 안케고개전투 교훈 160 군사연구 제128집 “주공방향은 빈딘 북쪽으로 푸미, 호아이언, 오아이년 3개 군으로 구성되어 있 으며, 괴뢰군 주력군 격퇴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질 전투지역이다. 아군 제3보병사 단(12연대 감소)이 공격을 전담하게 된다. 제2공격방향은 빈딘 남쪽에 위치한 안 년, 빈케 동북지역 2개 군으로, 빈딘성 주력군이 공격을 전담하고 적 격퇴 및 인 민해방에 주력할 것이다. 협공방향은 19번 도로, 낭 언덕의 혼뇬-혼끼엔에 이르 는 지역으로 아군 제12연대가 담당하게 되며 한국 맹호사단 2개 연대가 타 지역 에 대한 지원에 나설 수 없도록 유인, 봉쇄하기 위해 장기간에 걸쳐 교통이 차단 될 지역이었다.” 17) 안케전투는 수도사단 기갑연대가 1972년 4월 11일부터 26일까지 16일간 안케고 개 및 638고지 일대에서 치른 한국군 최대의 격전이었다. 은밀히 침투한 증강된 연대 규모의 북베트남 정규군에 의해 안케고개가 차단되자, 수도사단은 기갑연대 뿐만 아니라 사단의 가용병력을 총동원해 격렬한 공격을 감행했다. 전투는 제1대 대(+)의 638고지 전투(4월 13일~24일), 제2대대의 무명고지 전투(4월 13일~24 일), 제3대대의 19번 도로 개통작전(4월 13일~26일)로 구분된다. 수도사단은 작 전 16일 만에 638고지 일대를 탈환하고 19번 도로를 개통함으로써 작전을 종료했 다. 그러나 적에 관한 정보도 알지 못한 채 획일적인 정면공격을 반복한 결과 많 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문제점이 많았던 전투였다. 18) 안케고개에는 수도사단 기갑연대 제1중대가 중대전술기지를 설치하고 주둔하고 있었다. 제1중대는 고개 정상 600미터 고지에 중대본부와 제1소대가, 제2소대는 240고지(일명 지리산 고지), 제3소대는 168고지(일명 백두산 고지)에 배치하고 있 었다. 안케고개 전투의 목표인 638고지는 중대본부로부터 남동쪽 50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이 고지에 제1중대 1개 소대가 주둔하였으나 철수준비에 따라 1971년 8월에 병력을 철수시켰다. 이후 638고지에 대한 수색정찰이나 감시활동이 소홀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북베트남군의 침투와 기습공격을 허용하게 되었다. 먼저 638고지 전투(4월 13일~24일)는 4월 11일, 05 : 05에 1개 분대 규모의 북 베트남군이 제1중대의 소도산 기지 기습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어서 수 미상의 적 이 19번 도로에 출몰해 교량과 도로를 폭파하자 사단 공병중대에 의해 적을 격퇴 하고 교량을 복구했다. 야간에 제1중대 1소대 매복조 9명을 투입했으나 638고지 17) 이미선 역, 『항미전쟁의 종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9, p.585. 18) 안케고개 전투는 주로 638고지 전투 위주로 분석되어 있으나, 무명고지 전투와 19번 도로 개통을 위한 동․서쪽 강점에 대한 전투에 대해 종합적인 분석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