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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전쟁시 케산전투 및 안케고개전투 교훈 158 군사연구 제128집 수송 및 정비요원의 파병을 요청하였다. 따라서 제127공병대대를 모체로 한 한국 군 군사원조단 즉 비둘기부대가 편성되어 1965년 3월 16일에 사이공에 도착하여 지안(Di An)으로 이동해 주둔하면서, 사이공 외곽도로 건설과 각종 건설지원임무 를 수행했다. 제3차 파병은 1965년 3월 8일, 미 해병 2개 대대의 파병에 이어 실시되었다. 제 2해병여단이 그해 10월 9일, 깜란(Cam Ranh)에, 수도사단(-1)은 11월 1일까지 뀌 년(Quy Nhon)에 상륙했다. 주월 한국군 사령부가 10월 20일에 사이공에 개소하 여 작전을 지휘했다. 제4차 파병은 베트남전쟁의 악화로 추가병력 증원이 요구되어 1966년 4월 19 일, 수도사단 제26연대가 뀌년에, 제9사단이 10월 8일까지 닌호아(Ninh Hoa)일대 에 전개하였다. 이로써 1966년 말 기준 파병병력은 45,605명이었다. 주요작전은 1번 도로를 연하여 보급로 확보, 해안선 주요시설 방호 및 평정작 전을 실시했다. 파병기간 중 작전은 대대급 이상 작전이 1,175차례이었으며, 주요 전투는 1965년 10월 29일의 베트남 중부 빈딘성의 풍선(Phung Son)마을 전투를 시작으로 둑꼬 전투, 오작교 작전 등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달성했다. 15) 본고에서 안케고개(Deo An Khe) 전투에 주목하는 것은 ‘베트남전쟁의 베트남 화’에 따라 1971년 12월 4일부터 1973년 3월 23일까지 단계적 철수 과정에서 발 생한 전투로서 북베트남군은 베트남전의 끝내기 승부수를 띄운 것이 1972년 춘계 공세였다. 1968년 구정공세와 케산전투 후 시작된 평화협상의 지연 후 전투력을 보강한 북베트남은 1972년 3월, 15개 사단 중 12개 사단을 투입해 ‘춘계공세’를 감행했다. 16) 춘계공세는 북베트남의 치밀한 공격준비하 1972년 3월 30일부터 10 월 초까지 6개월간 지속되었다. 1971년 5월, 북베트남 중앙당위원회 정치국은 1972년 남부 전역에서 대규모 전략적 공세를 펼칠 것을 결정했다. 이같은 주요공 세의 주요 목표는 남베트남에서 적 주요병력을 대부분 격퇴하고 민중봉기를 더욱 촉발시키며 도시에서의 정치투쟁을 한층 강화하는 것이었다. 북베트남군은 제304사단 등 4개 사단을 북부지역에, 제3사단 등 3개 사단을 중 부지역에, 제5사단 등 4개 사단은 남부지역에서 각각 공세를 감행했다. 중부지역은 15) 최용호,『베트남전쟁과 한국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4, pp.223~228. 16) 북베트남군의 춘계공세에 닉슨은 북폭으로 맞섰고, 그동안 성역으로 간주하고 있던 하노 이폭격까지 승인했다. 이러한 배경은 중국과 소련과의 긴장완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 뒷받침되었다. 앞의 책, pp.11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