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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전쟁시 케산전투 및 안케고개전투 교훈 156 군사연구 제128집 여기에서 잠시 오늘날 8년이 지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병력증파 논쟁에 대해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아프가니스탄전쟁 8년 평가 보고서’에 “1년 내 4만여 명의 대규모 증파가 없으면 임무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아프가니스탄 주 둔 연합군의 총지휘관인 스탠리 매크리스털과 제임스 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 관의 시각 차이는 군사작전에 대한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 11) 따라서 전쟁 에 임하는 군사 지휘관과 민간 안보 책임자와의 정책결정은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둘째, 게릴라전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항공 및 포병화력에 대한 지나친 과신과 화력소모 즉 낭비를 초래했다. 12) 항공기에 의한 공중공격은 하루 평균 300회, 매 5분마다 폭격이 있었다. B-52폭격기 등에 의해 케산에 투입된 폭탄의 총량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5배에 해당하는 화력으로 하루 5,000개의 폭탄이 투하됐다. 그리고 100여 문의 크고 작은 대포들이 적이 포 1발을 쏠 때마 다 20여 발씩 대응한 지나친 화력의 낭비였다. 총 2,000여 발을 북베트남군 진지 를 향해 사격했으나 동굴에 은폐된 대포들을 파괴시키지는 못했다. 이러한 점은 남한의 중동부 축선과 북한 북부의 산악지형에 대해 공중공격을 포함한 화력전투 의 우세가 승리를 보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배해서는 곤란하다. 셋째, 병력의 집중과 분산 측면에서 랑버이전투를 간과할 수 없다. 케산으로부 터 불과 7km 떨어진 곳에서 방어하던 미 특수부대와 몽타나르 산악족은 북베트 남군 제304사단 증강된 제24연대의 공격으로 500여 명의 전사상자가 발생했다. 13) 랑버이에 북베트남군이 공격시 케산을 방어하던 미 해병 26연대에 지원을 요청했 으나 9번 국도상 매복해 있던 북베트남군의 위협으로 미 해병 26연대장 로윈드 11) 조선일보, 2009. 10. 6일자. A6면. 정책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베트남전 관련 서적은 ‘재앙의 교훈(Lessons in disaster)’과 ‘더 나은 전쟁(A better war)’로서 군부와 정치가의 뚜렷한 시각차를 나타내고 있다. 12) 베트남 게릴라전의 특성에 관해서는, 계운봉,「베트남전쟁에서의 게릴라전 특성연구」, 『군사연구(제127호)』, 육본 군사연구소, 2009, pp.133~135를 참조. 13) 베트남전에서 ‘몽타냐르(Montagnard)’ 산악족 5,400여 명은 남베트남내의 북베트남군 과 베트공들의 동정에 대한 정보, 그리고 라오스 및 캄보디아를 연하는 호지명루트 의 탐색 등의 정보를 제공하였다. 이세호,『한길로 섬겼던 내 조국』, 대양미디어, 2009, p.413. 당시 랑베이에는 미 특수부대(The Green berets) 24명과 몽타냐르 산지 족으로 편성된 민간 비정규전 방어팀(Civilian Irregular Defense Group) 500명이 있 었다. http://en.wikipedia.org/wiki/Battle of Lang V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