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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전쟁시 케산전투 및 안케고개전투 교훈 154 군사연구 제128집 1차 공격은 1월 21일 미 해병 26연대 3대대가 방어 중이던 케산기지로부터 북 서쪽으로 3km 떨어진 861고지에서 철조망을 파괴하고 공격해오는 북베트남군과 백병전이 전개되었다. 기지에서는 북베트남군의 포병사격으로 활주로가 파괴되고, 1,350톤의 탄약고가 폭파되었으며, 18명이 전사하고 40명이 부상하였다. 당일 공 격 후 구정공세가 시작되어도 공격은 하지 않고 포병사격만 계속했다. 비록 미군 피해는 많지 않았으나 이 전투로 인해 미국 여론의 관심은 제2의 디엔비엔푸 비 극이 반복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로 나타났다. 7) 케산에 대한 2차 공격은 2월 5일 실시되었다. 북베트남군의 제325사단은 케산 기지 주변의 감제고지를 점령하고, 이 감제고지에서 케산기지에 대하여 정확한 포격의 엄호하에 북서쪽에서 공격을 했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 참전하였던 제304사단은 랑베이 기지를 점령한 후 케산기지 남쪽에서 공격하여 제2의 디엔비 엔푸를 연출한다는 것이었다. 2월 7일, 랑베이가 피탈되고 3월 초까지 화력전과 소규모의 근접전투가 전개되었다. 3월 14일부터 북베트남군의 철수 징후가 포착되고, 4월 1일에 미 제1기병사단 과 남베트남군 공수 1개 대대 합동으로 공중기동작전을 실시했다. 4월 6일, 남베 트남군 공수대대가 케산기지에 도착함으로써 케산전투는 4월 7일 끝났다. 2. 전투결과 및 교훈 77일간의 케산전투와 구정공세는 베트남전쟁의 분수령이 되었다. 당시 미군은 사전에 공격징후를 포착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했고, 전투간 통합 화력운 용 등 월등한 전투력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방어를 실시하여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군의 전술적 승리는 ‘베트남전쟁의 베트남화’전략에 따라 평화협상, 미군철수 등으로 이어지는 전략적 패배로 이어졌다. 케산전투의 교훈은 다음 몇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첫째, 무엇보다도 케산전투와 구정공세에 대해 전술적 방어에서 신속히 전략적 공세로 전환하지 못했다. 즉 케산전투와 구정공세를 통해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기 때문에 전술적으로는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으나 미국의 7) 유제현,『월남전쟁』, 한원출판사, 1992, pp.265~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