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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쟁 사 군사연구 제128집 149 Ⅰ. 서 론 전투에서 승리하고 전쟁에서 패배하다! 1968년 초, 1월 21일부터 4월 7일까지 77일간 베트남 중부 서쪽의 케산(Khe sanh)전투 결과 양측의 전사자는 미군은 불과 205명, 반면에 북베트남군은 10,000명~15,000여 명으로 미군의 분명한 승리 였다. 그러나 7,000km 떨어진 미국 본토에서는 반전(反戰) 여론이 형성되고 결국 에는 ‘베트남전쟁의 베트남화’로 평화협상과 미군철수로 이어지는 전쟁에서 패배 하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초래되었다. 한편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은 1965년 10월, 풍선(Phung son)전투이래 1,175 차례에 걸쳐 대대급 이상 전투를 수행해 오면서 인명손실을 최소화하였다. 그러 나 1972년 4월 11일부터 4월 26일까지 16일 간의 안케고개전투에서 베트남전 참 전이래 단일전투로 가장 많은 74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더구나 이 전투는 그동 안의 비정규전부대와의 전투가 아닌 북베트남 정규군과의 한 판 전투였다. 그런 데 왜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초래되었을까?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의 방어 전투였던 케산전투와 한국군의 공격 전투였던 안 케고개 전투는 작전형태로 보면 엄연히 다른 형태의 전투이다. 그러나 베트남전 에서 분수령이 되었던 1968년의 구정공세와 1972년의 춘계공세 기간에 발생한 전 투로서 차후 전장의 주도권 장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베트남전 참전 45주년 이 되는 이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와 그 교훈은 무엇일까? 이같은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 본고(本稿)는 1968년의 북베트남군의 기만공세 와 미군의 화력전과의 한 판 승부였던 케산전투를 분석하고 또 북베트남군의 베 트남전 끝내기 승부수였던 1972년 춘계공세시 한국군과의 안케고개 전투를 분석 하여 그 교훈을 찾고자 한다. 이를 위해 최근 발간된 『항미전쟁의 종결』을 반영 하여 전투에서 승리가 결코 전쟁의 승리로 귀결(歸結)되지 않으며, 한 순간의 방 심이 전장에서 많은 인명손실을 초래한다는 점을 인식하고자 한다. 그리고 최근 발간된 ‘항미(抗美)전쟁의 종결’ 1)에서 언급된 북베트남군의 시각을 반영했다. 1) 최근 발간된 베트남전쟁 관련 번역서로서, 원작은 베트남 인민군대 출판사가 베트남전쟁 을 총결산하는 차원에서 편찬한 것이다. 주요내용은 1975년 춘계전투, 베트남북부후방 지 원, 1964년부터 1972년까지 주요 전투에 대해 북베트남군 입장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 했다. 이미선 역, 『항미전쟁의 종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