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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역 사 및 역 사 일 반 군사연구 제128집 15 Ⅲ. 선진 육군시대의 서막 수도보병사단의 제1보병연대와 기갑연대의 베트남전 파병이 확정되자 육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듯 올랐다.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전투부대의 파병이 갖는 역 사적 충격과 함께 3류 군대급 육군의 전투 장비를 1류급 군대의 장비로 현대화 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더구나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는 현 상황하에서 전투경험을 통한 우위의 전투력 확보가 당면 과제였다. 1965년 당시 우리 육군의 군제(military system)는 미군의 것을 모방하고 있었 지만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본군식의 리더십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 원인은 철저한 인사적체 때문이었다. 그 한 예로서 육군의 지휘부를 보면 이 해하기 쉽다. 세계 군사상 유례없는 95% 이상의 장군 진급을 기록한 군 초창기 군사영어학교 출신 장군들은 장기간 계속해서 참모총장직을 독점하고 있었다. 일반 군사학교의 1개 기수에 해당하는 군사영어학교 출신 이응준 준장이 초대 총장을 맡았고 2대 채병덕 준장에 이어지고 장장 20년간 18대 김계원 대장까지 군사영어학교 출신이 총장직을 독점하고 있었다. 이들 모두 일본군 만주군 출신 장군들이었다. 이러한 전근대적 인사 적체는 곳곳에서 하극상 사건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건은 육사 8기 김종필 중령이 주도한 하극상 사건이고 다른 하나 는 제28사단장을 휘하 보병대대장이 권총으로 사살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8기생 의 하극상 사건은 인사 적체에 따른 불만 누적으로 발생한 사건이지만 제28사단 장 사살 사건은 리더십에 관한 복잡한 문제가 얽히고 있었다. 사단장은 일본군 출신으로 철저한 일본군 리더십을 고수하고 있었다. 일본군 리더십의 특징은 절대 복종과 일방적 명령 이행의 강압에 있다. 부하는 무조건 상관의 명령을 복종해야 하고 건의와 의견 제시는 묵살되었다. 대대장 정구헌 중 령은 미국 육군보병학교 OBC과정을 이수한 엘리트 장교였다. 일방적이고 폭행을 불사하는 사단장에게 그 울분을 참지 못하고 현장에서 권총으로 사살한 것이다. 이 사건에 있어서 추호도 정구헌 중령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일본군식 리 더십과 현대적 개념의 리더십의 상충에서 온 불행한 사건이므로 교훈적인 측면에 서 우리는 깊이 관조해야 한다. 필자가 보는 당시의 육군은 장비면에서 뿐만 아니라 지휘체제나 리더십에 있어 서도 선진국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군대였다고 지적하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