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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전적 수준에서 재조명해 본 獨·佛戰役(1940) 130 군사연구 제128집 갑작스런 지상군 정지명령 19) 으로 괴멸직전에서 그 유명한 덩커크(Dunkirk)철수작 전 20)을 감행하여 33만 여명의 연합군이 영국본토로 철수할 수 있었다. 2. 제2단계 작전(6월 5일∼6월 25일) 이와 같은 와중에 프랑스는 총사령관 가믈렘장군을 해임시키고 대신 웨이강 (Weygand)장군을 임명하고 부대를 재편성하여 에느강과 솜므강을 연하여 방어 선을 급편하였다. 21) 아울러 분단된 좌익군과 연결을 위한 남북협력을 시도하였으 나 성과 없이 끝나버렸다. 한편 독일군은 6.4일부로 플랑드르전투를 종결짓고 프랑스군에 대한 제2단계 공세로 전환하였다. 제2단계 작전은 조공인 B집단군이 실시한 솜므, 에느강 하류 의 작전과 주공인 A집단군에 의한 에느강 중류작전(6월 9일∼12일) 그리고 추격 작전(6월 13일∼25일)으로 구분되어 수행되었다. 6월 5일 조공인 B집단군이 솜므, 에느강을 도하하여 프랑스군을 남쪽으로 압박 할 때에 중앙의 A집단군은 주공이 되어 6월 9일 중앙돌파 후 마지노선 후방으로 우회기동을 하였다. 또한 6월 10일에는 이태리마저 선전포고와 동시 프랑스군의 동남쪽에서 배후공격을 개시하였다. 6월 14일에는 파리가 함락되었으며, 지금까지 프랑스군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던 마지노선마저 붕괴되었다. 그와 동시에 6월 17일 구데리안 기갑군이 스위스 국경에 도달하여 마지노선의 19) F. W. Von Mellenthin, 『Panzer Battle: 기갑전투』민평식 역, (서울 : 병학사, 1985), pp.48∼49. 정지명령의 이유를 종합해보면 당시 악천후로 인한 기갑부대의 기동 제한, 2단계 작전을 위한 기갑부대 보전 차원, 괴링(Goring) 공군사령관의 공군만으로 영국군 철수를 막을 수 있다는 조언 그리고 차후 영국과의 강화조약을 위한 정책적 차원 등을 고려한 것으로 판단됨. 20) 일명 다이나모작전(Operation Dynamo)으로 불리는 해상 철수작전(1940.5. 27∼6.4)에는 해군 군함으로부터 어선, 유람선, 요트, 전마선, 구명보트 등 약 17,000여척의 배가 동원 되었음. 당시 철수에 성공한 연합군 337,000명 중 프랑스군이 11만명이었음. 철수한 연합 군과 동원된 배의 숫자가 한국에서 기 발간된 자료(정하명 외 『세계전쟁사』 등)에 기 재된 내용과 상이하나 다수의 외국군 사료를 확인하여 필자가 재정리하였음. Archer. Jones, The Art of War in the western world, (New York : Oxford univ. press, 1987) p.538.와 Allan Shepperd,『프랑스 1940』김홍래 역, (서울: 플래닛미디어, 2006), pp.135 ∼137임. 21) 당시 가용한 사단은 총 68개 사단으로 마지노선 방어에 17개 사단, 측후방과 서부방어에 43개 사단, 기갑 3개 사단, 경기병 3개 사단, 영국군 2개 사단 등을 투입하였으나 장비 및 사기 면에서 불리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