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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쟁 사 군사연구 제128집 111 에 나왔으나 동시에 시작했어야 할 공격시간을 이미 놓친 뒤였다. 미 해병 제7연 대 제1대대 옆에 있던 육군 제164연대 제2대대는 한 몸이 되어 해병대를 도와 일 본군의 공격을 물리쳤다. 일본군은 수없이 많은 파상 공격을 감행하여 왔고 그 때마다 미 해병대와 육군의 2개 대대는 81mm 박격포와 37mm 대전차포 등 동원 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사용해 일본군의 돌격을 격퇴하였다. 이때 후루미야 제29연대장을 포함한 일부 소규모 일본군 병력이 미군 방어선을 뚫고 들어와 미군 방어선 뒤에 있는 정글지대로 들어갔다. 이날 아침 7시까지 계 속되던 전투는 끝나고 마루야마는 병력을 정글로 후퇴시켜 재정비하여 다음 공격 을 준비하였다. 이날 일본군 소수병력이 미군 방어선을 돌파한 것을 비행장을 점 령한 것으로 일본군 상부에 잘못 보고되었는데, 이 보고는 제17군 사령부와 트럭 환초에 있는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제독에게까지 보고되어 일본군의 여러 사 령부에서는 환성이 터졌다. 머지않아 이 보고는 잘못된 보고였다고 판명되었다. 미군 방어선을 돌파해 들 어갔던 후루미야 대좌 이하 소수병력은 곧 이를 알아챈 미군에게 포위되어 모두 사살되었고 후루미야 연대장은 연대기를 불태우고 총으로 자살하였다. 이날 일본 군 포병은 150mm 야포 14)을 동원하여 세 시간 동안 미군 진지에 포격을 가하였 고, 일본 항공기들은 일곱 차례에 걸쳐 룽가 정박지를 포함한 미군 진지에 폭격 을 가하였다. 그날 밤이 되자 마루야마 장군 휘하의 일본군은 다시 공격을 시작 하였다. 일본군은 제16연대와 제29연대를 공격에 투입하여 전날 밤과 똑같은 방식의 공 격을 되풀이 하였으나, 미군은 일본군의 재공격을 예상하고 육군 제164연대의 예 비대까지 투입하여 방위를 증강시켜 놓은 상태였다. 피의 능선 공격에 있어 한 달 전에 있었던 가와구치 부대의 공격 방식과 마루야마 부대의 공격 방식은 기본 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일본군은 기관총의 지원을 받으며 소대 내지 중대 규모의 병력으로 어둠 속에서 계속 파상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모두 미군의 견고한 방어 력에 의해 격퇴되고, 이튿날인 10월 26일 아침이 되자 1,000여구의 시체를 남기고 정글 속으로 다시 후퇴하였다. 한편, 10월 25일 새벽에 비행장을 점령하였다는 잘못된 보고를 받은 라바울의 14) 당시 과달카날의 미군이 보유한 야포는 75mm, 105mm 뿐이었으므로 일본군의 150mm 야포에 대항할 수 없었음. 미군은 일본군의 150mm 야포를 피스톨 페테(Pistol Pete)라고 불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