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page

. 전 쟁 사 군사연구 제128집 109 을 공격하여 주력부대를 지원하려던 스미요시부대의 포병과 전차부대의 공격이 10월 20일 이루어졌으나 미군의 방어망을 뚫지 못하고 실패하자 자연히 10월 21일 에 계획되었던 공격계획은 22일로 연기되었다. 항공사진을 본 가와구치 소장은 나스 소장과 제29연대장 후루미야 마사지로(古 宮正次郞) 대좌에게 이런 상황이라면 좀 더 동쪽으로 우회하여 상대적으로 방어 상태가 약한 피의 능선 동쪽을 공격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말하였다. 10월 22일 오후, 가와구치 소장은 공병대가 건설한 마루야마 통로 끝 지점에 도착하였 는데, 여기서 과달카날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도쿄의 대본영에서 파견 나온 쓰지 마사노부(辻政信) 중좌를 만나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한 뒤 마루야마 중장에게 전 달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쓰지 중좌는 이 안에 찬성하였다. 계급은 비록 중좌이 지만 대본영에서 파견 나왔으므로 마루야마 중장도 쉽게 수긍하여 자신의 변경된 공격계획 들어 주리라고 가와구치 소장은 생각했던 것이다. 10월 23일, 가와구치 소장이 우익대를 비행장 동쪽으로 우회시키려고 할 때에 사단 통신대가 전화선을 가설해 온 것을 알고 수 백미터 떨어져 있는 전화기까지 가서 사단 사령부의 다마키(玉置) 대좌와 통화할 수 있었는데, 그는 가와구치 소 장에게 최초 공격계획대로 하라고 지시하였다. 30분 뒤 다마키 대좌는 가와구치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단명령으로 가와구치 소장은 파면되었으니 지휘권을 쇼 지 도시나리(東海林俊成) 대좌에게 인계하라고 전하였다. 마음속으로 가와구치 장 군을 멸시하고 있었던 쓰지 중좌는 교묘하게 가와구치 소장의 의견을 사단장에게 전하지 않았다. 가와구치 소장은 공격 명령대로 제 시간에 공격선상에 위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면된 것이다. 마루야마 중장과 쓰지 중좌는 가와구치 소장을 패장이라고 마음속으로 멸시하고 있었다. 마. 마타니코 강 전투 한편 정글 안에서의 부대 이동이 계획대로 되지 않자 마루야마 중장은 10월 22일로 변경된 공격계획을 다시 23일로, 이것을 다시 24일로 연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와구치 소장이 지휘관직에서 파면되던 날, 가와구치 소장과 육군대학교 동기생인 스미요시 소장이 지휘하는 부대는 마타니코 강 동쪽에 있는 미군에게 집중 포격을 가한 뒤 전차가 쉽게 건널 수 있는 강 하구를 통해 전차부대와 보병 부대가 미군 지역으로 공격해 들어갔으나 미 해병 제1연대의 제3대대가 지키고 있는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