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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쟁 사 군사연구 제128집 103 야, 배를 가르라”고 격노하였다. 가와구치는 와타나베를 군법 회의에 회부하여 부 끄러움을 주는 것보다는 할복(割腹)시키는 것이 무사(武士)의 정(情)이 있는 것으 로 생각했으나 다음 총 공격 작전시 기회를 주어 명예회복을 시켜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감투정신이 크게 부족하여 가와구치 소장을 노엽게 만든 와타나베 중좌는 그 뒤 예비역으로 편입하여 10월말에서 11월초 사이에 과달카날을 떠났다. 와타 나베 중좌의 죽음을 두려워한 비겁한 행동으로 일본군은 미군 막사에까지 공격하 고서도 승리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다. 2차 피의 능선 전투 중 2차 공격 그날 밤 가와구치 부대는 에드슨 중령과 그의 부하인 베일리(Kenneth Bailey) 소령의 부대가 방어하고 있는 능선을 12차례나 돌격을 감행하였으나 해 병대의 견고한 방어진지를 뚫지 못하였다. 다음 날인 9월 14일 새벽이 되자 그 때까지도 일본군의 돌격은 계속되었지만 에드슨 중령은 능선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방어선 후방에서 에드슨 대대를 화력으로 지원하는 제11 포병 연대의 105mm 곡사포는 이날 밤 공격해 오는 일본군을 향하여 1,992발을 발사 하였다. 새벽이 되며 날이 새기 시작하자 헨더슨 비행장에서 미군 전투기들이 이륙하여 다시 정글속으로 퇴각해 가는 일본군을 하늘에서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과달카날 앞바다에 있는 일본군 함선 위에서는 감시병이, 일본군의 승리를 알리는 신호탄 이 비행장 활주로 끝에서 하늘로 발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그 신호탄은 결 국 발사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승리를 확신했던 가와구치 소장은 부하들에게 후퇴명령을 내려야만 하였다. 한편, 비행장 동쪽에서 공격하기로 되어 있던 이치기 지대의 제2진은 제1진이 전멸하였던 일루강 하구에서 3km 상류쪽으 로 올라간 곳에서 13일 밤 자정쯤부터 다시 미군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였으나 결 국 해병 제1연대의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16일까지 산만한 공격을 계속하다가 과 달카날의 동부해안 콜리 곶 쪽으로 퇴각하였다. 이 공격에서 이치기 지대의 제2진을 지휘한 미즈노 소좌도 전사하여 제2진의 공격은 완전히 좌절되었고 결국 이치기 지대는 제1진과 제2진 모두 일루강가에서 전멸한 것이다. 그리고 비행장 서쪽에서 공격하기로 되어 있는 오카 대좌가 지휘 하는 부대는 9월 14일 오후, 미 해병 제5연대의 방어지역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였 으나 이 역시 해병대의 완강한 반격과 포격으로 격퇴되어 서쪽으로 퇴각하였다.